한국일보

이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2000-11-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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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윤<수필가>

얼마 전 산호세에 가면서 친구를 데리고 갔다. 혼자 대여섯 시간을 운전해서 다녀 올 생각을 하니 너무 지루할 것도 같고, 15년여를 오픈 투 클로스(Open to Close)하느라 집과 비즈니스와 교회밖에 모르고 살아 온 친구에게 하루쯤이라도 바깥바람을 쐬게 해주고 싶었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혼한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속담에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두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는 세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운전을 하는 동안 옆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늘어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진작 이 러시아 속담을 말해 주지 못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당히 오랜 세월을 교회에 의지하고 독신으로 버티다가(중년 남자가 혼자 산다고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더라고 했다.) 목사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얻었는데, 그만하면 흠잡을 곳 없는 지금의 아내는 대학생인 아들과 사이가 나빠 극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얘기고 다 아는 얘기지만, 이 경우 아내와 아들이 격렬히 다툰다면 당사자인 친구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한국 가정들이 겪었던 고부간의 갈등과 유형은 비슷하나 질적인 면에서는 재혼 가정이 훨씬 더 힘드는 모양이다.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해서 나는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할 바에는 해보기라도 하고 후회하자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살면 살수록 참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세익스피어를 훌륭한 사람이고 부르나 보다) 또 바이런은 “결혼으로서 모든 희극은 끝나고, 죽음으로서만 모든 비극은 끝난다”고 했다.

문제는 나를 비롯해서 이 세상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결혼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바이런의 말이 무서워서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반드시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결혼이란 것이 후회든, 비극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성실히 살아 내야하는 운명적인 것이라면, 부부가 서로 상대방에게는 좀 후한 점수를 주도록 하고 자신에게만은 인색할 필요가 있다.

결혼 생활을 테니스에 비유할 때, 즐겁게 치려면 항상 못 치는 쪽에 맞춰서 공을 넘겨 주어야한다. 왜냐하면 결혼은 부부가 승패를 가려야하는 시합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 결혼생할이란 쉬지 않고 공을 주고 받아야하는 테니스 같은 것…. 공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을 주어야 상대방이 잘 받아 칠 수 있을까? 늘 그걸 생각해야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배’를 보자, 배라고 하는 것은 정박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한 법이다.

그러나 배는 안전하게 머물러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결혼이란 바다를 향해 떠나야하는 배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이 글의 제목 앞에서는 결코 당당하다거나 자유롭지 못하다. 참 많이도 싸우며 살았다. 그래서 부끄럽다. 하지만 친구가 몇 번이나 혼자 살았던 동안의 경험을 ‘뼈저린 고독’ 이었다느니 ‘처절한 외로움’ 이었다느니, 병든 아내가 누워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이혼이란 것이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한인타운의 절반이 과부란 소리가 나돈지 이미 오래다. 요즘엔 한인 이혼율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니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다. 나는 이혼이 부부 당사자의 문제를 떠나 죄 없는 자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사회문제를 만들고, 그 동안 당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잃게 되며, 새로 시작하는 것은 백배 더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이혼율이 높은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내 생각과 다른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너그럽게 보아주길 바란다.

‘3개월 사랑하고, 3년을 싸우고, 30년을 참아야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들었다. 친구여! 부디 이 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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