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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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 한글학교, 한인친구

2000-11-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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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수<교육학박사>

대학졸업 후 미국으로 온 후에 남부와 서부에서 살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미얀마(버마)와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도 생활했다. 이제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었다. 뉴욕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뉴욕 한인사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이었다.

세계적인 대도시에 살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한인사회를 꼽는다면 이곳 뉴욕이다. 옛 것을 귀하게 여기고 새 것을 익힌다는 온고이지신이란 훌륭한 생활지침이 있다. 하지만 ‘온고’가 너무 강조된 곳이 뉴욕이라면 지나친 편견일까? 무엇보다도 자녀들 교육문제가 그렇다.

한인교회, 한글학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국인 이민사회의 중추가 되는 기관이다. 집에서 한국말로 대화하고, 한국음식을 즐기고, 한인교회와 한글학교에 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부모로서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친구도 한국아이들끼리만 사귀기를 원한다. 특히 소수민족이나 흑인친구와 교제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성관계에서는 한인 배우자를 찾지 못하면 차라리 혼자 살아야 할 형편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더 높고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부모란 중책은 주어진 소명이며, 자녀들은 독립된 개체이며 인격체이다. 부모들의 자존심이나 생활관 혹은 체면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이 되라’는 격언처럼 미국에 이민 왔으면 미국사람이 되어야 하고 미국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이 땅에 새로운 빛으로 부상되어야 한다.

한국인끼리 정답게 모여 살며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땅에 뿌리를 옮겨 심은 이상 우리의 자손들이 힘껏 최선을 다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플러싱 한인타운에 가둬둘 수는 없다. 미국의 주류를 이끄는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사회를 큰 안목으로 익히고 교제하고 공부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고등학교까지 한인친구를 사귀던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한인학생회에서나 기를 펴고 활동하며 직장에서는 한인 동료가 극히 없음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능력과 활동력 있는 직장생활을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재미를 잃고 자주 직장을 바꾸다 보니 결국 지도자의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예가 허다하다.

남미에 사는 동안 한인과 일본 이민자들의 이민 역사를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페루에서는 일본인 후예가 대통령이 되었고 아르헨티나에서도 일본인 이민자들이 지역사회와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아르헨티나를 떠나 뉴욕에 올 때는 미국 남서부 보다 더욱 활동적이고 개방적이고 앞서가는 한인사회를 기대했지만 아쉬움이 크다. 떠나온 조국은 어머님의 품과 같이 항상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 미국땅은 우리 자녀들과 이민자들의 현주소인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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