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 선거를 점치기 힘든 이유

2000-11-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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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주필)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가까워 오니까 “고어가 되는 겁니까, 부시가 되는 겁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기자니까 뭘 아는게 있겠지” 하고 물어 보는 모양인데 사실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궁색하다. 누가 선거에서 이길지 그림이 안잡히는 것이 이번 선거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할수 있을 것이다.

“누가 더 인기가 있습니까”

“부시가 더 인기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중에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까”

“부시 지지하는 주가 더 많을 겁니다”

“그럼 부시가 당선되는 겁니까”

“그건 예측 불허입니다”

인기도 더 있고 지지하는 주도 더 많으면 그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가 그렇지도 않을수도 있다는데 묘미가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직접 선거가 아니다. 간접선거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선거인단은 538명이다. 따라서 270명만 확보하면 대통령에 당선되는 선거다. 고어나 부시에게는 ‘270’이라는 숫자가 매직 넘버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의 선거인단은 54명인데 비해 뉴햄프셔 같은 주는 4명이다. 그러니까 39개주와 워싱턴 DC에서 져도 선거인단이 많은 11개주에서 이기면 승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이 현상은 92년 클린턴과 부시의 대결에서 나타났다.

11개 주는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 펜실베니아, 일리노이, 오하이오, 미시건, 뉴저지,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주등이다. 선거막판에 부시후보가 총력을 다해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의 고어후보가 자질면에서 공화당의 부시후보보다 훨씬 앞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우등생 뽑기가 아니다. 1968년 선거 때 민주당의 험프리와 공화당의 닉슨이 대결했다. 누가 봐도 인격면에서나 능력면에서 험프리가 닉슨을 눌렀다. 더구나 험프리는 당시 존슨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준비된 대통령 후보였고 닉슨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신 초라한 정치인이었다.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닉슨이 당선되었다. 미국민들이 닉슨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미국 정치사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변으로 꼽히고 있다. 왜 이런 해프닝이 일어나는가.

TV 연속 방송극 ‘허준’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하루에 4시간씩 방영한다면 시청자들이 볼까. 또 ‘허준’이 몇 년 계속 방영된다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까.

시간에는 권태라는 것이 있다. 연속방송극은 1시간 넘으면 지루하고 골프도 2 라운드 돌면 지겨워진다. 부부도 20년 되면 권태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대통령은 8년이다. 어느 정권이 8년 집권하면 국민들은 지루해 한다. 이 원리 때문에 닉슨이 험프리를 누를수 있었다고 본다. 유권자들은 항상 정권을 바꿔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연임할 경우에는 대통령과 국민사이에 권태가 생기게 되며 이 현상은 루즈벨트, 트루만, 아이젠하워, 존슨(케네디의 임기 채우고 재선되었음) 때에 일어났었다. 레이건 때에는 8년 연임하고도 후임에 부통령인 부시가 바톤을 인계받는 이변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공화당 정권에 싫증을 느낀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부시를 낙선시키고 클린턴을 선택하는 변화를 보였다.

고어가 부시보다 대통령 재목으로 더 인정을 받고 있지만 클린턴의 8년 집권에서 오는 국민의 권태감 때문에 고전할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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