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인간승리

2000-11-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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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구성훈 사회부 기자

남편으로부터 심하게 맞은 뒤 얼굴반쪽이 손상돼 9년이라는 긴 세월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절망속에서 보내다 한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얼굴재생 수술을 받고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입양아 출신 한인여성 샌드라 크로켓(패사디나 거주·37)의 스토리는 작은 인간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스토리는 행복했던 한 여성의 삶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힐수 있다는 사실을 한인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망가진 얼굴을 남은 물론 자신의 아이들에게조차 보이기가 두려워 마스크 뒤에 얼굴을 숨긴채 오랜 세월을 살아야 했던 그녀. 뒤늦게나마 자신을 처참하게 망가트린 남편을 경찰에 고발했으나 시간이 너무 지났다는 이유로 체포할수 없다는 대답을 들은 뒤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마약과 알콜에 빠져 세번이나 경찰신세를 지기도 했던 샌드라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사람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멋지게 재기의 초석을 다지는데 성공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녀를 도와준 주위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그녀는 없었을 것이다. 유명 할리웃 여배우 헬렌 헌트의 언니와 어머니가 설립한 자선단체인 ‘헬핑 핸즈 프로젝트’(Helping Hands Project), 대책없이 길거리를 방황하던 샌드라를 지금까지 따뜻하게 보살펴준 기독교 여성보호소, 그녀의 수술을 집행한 성형외과 전문의 브라이언 키니 박사등은 샌드라가 지옥같은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인생을 시작하는데 큰 힘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샌드라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으려는 불같은 의지 때문이었다. 수술을 마친후 기자회견장에서 본 샌드라의 얼굴은 수술전과 별반 다를게 없었지만 과거를 깨끗이 잊고 앞만 보며 살겠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정폭력은 한인들의 삶에 있어 생소한 일이 아니다. 샌드라 크로켓의 스토리가 가정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모든 한인여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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