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기가 호황인데 고어는 왜 고전인가

2000-10-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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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식<아브라함 링컨 대학교 부총장>

세번에 걸친 미주-공화 두후보의 토론에서는 알 고어 후보가 더욱 논리적이었고 말솜씨에 있어서도 조지 부시 후보 보다 우수했다는 평가를 전문가들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토론 이후에 나타나는 지지도는 부시후보의 우세로 가닥을 잡아갔다. 고어 후보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즈같은 권위지의 지지를 얻었고 전국 교원노조, 굵직한 할리웃의 인기 연예인들과 전국 산별노조같은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인기가 날로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 말한 아이러니의 설명은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한 흑인 테니스 선수인 윌리암스 자매의 기자회견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윌리암스는 우승을 한 후 막대한 상금을 받고 나서 그녀의 세금관리자로부터 얼마만큼의 세금을 내야하는지를 보고 받았다. 전에 수입이 낮았을 때는 세금을 극히 적게 냈거나 전혀 내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고통을 전혀 모르고 자랐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고수입 미국인이 되고 나니 코앞에 내밀어지는 세금고지서가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녀가 기자회견에서 첫 마디로 언급한 말은 “우리가 내는 세금이 너무 많다”였다.

고어후보가 노인들의 처방약값을 보조해준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이미 처방약값의 보조를 받을 나이에 접어든 내 아내가 말을 했다. “처방약값을 도와주지 말고 노인들로부터 세금이나 적게 거두어 가라지” 사실 그녀의 말에도 미국 여당의 인기가 하락하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우리와 같이 수십년간 일을 하며 고되게 사회보장세금을 냈는데 이제 노인이 되어서 사회보장금을 혜택으로 받고 보니 그 혜택에도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그런 세금까지 거두어들이는 정부가 잔인하게도 느껴지는 것을 어쩔수 없다. 게다가 잉여 예산이 막대하게 늘어가고 있다는 현실은 정부가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들였다는 증거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가 호황이고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가면 거의 모두 세금을 내는 계층이 한두 단계 상승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수입이 늘어난 기쁨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괴로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게 돼 ‘감세’또는 ‘세금환불’이라는 단어가 더욱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양 후보가 수개월 동안 수 없는 연설을 했지만 국민들의 뇌에 제일 크게 남는 말은 고어의 ‘처방약 보조’와 부시 후보의 ‘감세’이다. 두 사람의 자질이나 자세한 정책을 분석해보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못하다. 단지 ‘처방약 보조’대 ‘감세’의 개념대결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최근에 비교적 성공적인 사업체를 인수한 한 한인사업가로부터 이런 아이러니를 설명하는 말을 들었다. 전에 봉급을 받기만 하던 때는 세금을 과다하게 낸다는 고통을 못 느꼈고 항상 민주당 후보에 투표를 했는데 이제 봉급을 주는 입장에 서고 보니 세금과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과중한 규제와 과세의 부담을 민주당의 허물로 돌리면서 금년에는 공화당의 후보인 부시에게 투표하겠노라고 했다.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세금을 과다하게 거두어들인다는 인식을 국민들이 갖게 되면 그런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교훈을 정치인들은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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