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0만달러 연봉시대 왔다

2000-10-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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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칼럼

▶ 박덕만(편집위원)

릭키 헨더슨이라는 노장 야구선수가 있다. 올시즌까지 22년을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온 그는 82년 130개의 도루로 루 브락의 단일시즌 기록 118개(74년)를 깬데 이어 91년에는 루 브락의 통산기록 938개도 추월했다. 올시즌까지 그의 통산도루기록은 1370개. 준족에 장타력도 있는 헨더슨은 지난 90년시즌 홈런 28개에 타율 3할2푼5리, 도루 65개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었다. 어느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헨더슨이 소속팀 오클랜드 A’s와 당시로서는 사상최고인 연봉 300만달러선에 3년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얼마후 다른 팀에서 300만달러가 넘는 연봉계약을 체결한 선수가 나왔고 그러자 헨더슨은 자신이 최고 연봉을 받는선수가 돼야 한다며 구단측에 계약갱신을 요구했다. 이를 구단측이 들어주지 않자 계속 불평을 하다가 얼마후 다른팀으로 트레이드됐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 헨더슨은 90년과 같은 전성기의 실력을 한번도 발휘하지 못했다.

뉴욕 양키스가 3년을 연속, 그리고 5년사이 4번째 월드챔피언에 오른채 2000 메이저리그 야구시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그러나 페넌트 레이스에 못지않게 뜨거운 것이 오프시즌 선수 스카웃 열풍이다. 이번 오프시즌의 최대관심사는 ‘2000만달러 선수’의 탄생여부에 있다. 일반 근로자의 임금이 갓난아기 걸음마를 한다면 메이저리그 선수 몸값은 초고속 전철을 타고 오른다. 사상처음으로 100만달러 연봉의 선수가 탄생했다고 떠들석했던 것이 불과 10여년전 일이고 다저스 투수 케빈 브라운이 1,500만달러 계약을 체결했다고 화제가 됐던 것이 엊그젠데 그새 2000만달러 연봉선수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평균연봉에도 못미치는 액수인 100만달러 연봉을 받는 선수는 어디가서 메이저리거라고 명함 내밀기도 쑥스럽게 됐다.

사상 첫 2000만달러 사나이가 될 주인공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다.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지 5년밖에 안되는 25세의 어린 나이지만 발빠르고 타율높고 홈런 많이 치고 수비까지 뛰어난 ‘메이저리그 최고의 올어라운드(all-around)선수’로 꼽히고 있다. 그의 올시즌 성적은 타율 3할1푼6리,타점 132, 홈런 41개, 도루 15개로 뛰어나다. 로드리게스는 내년시즌 계약을 자유롭게 맺을 수 있는 프리에이전트가 된만큼 메이저리그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며칠전 연봉 1700만달러에 4년간 계약을 연장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1루수 카를로스 델가도의 케이스가 로드리게스의 연봉요구에 상당한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델가도의 경우 타력면에서는 로드리게스에 못지 않으나 스피드는 다소 뒤진다. 시카고 컵스의 홈런왕 새미 소사가 내년시즌 1200만달러 연봉계약을 남겨둔채 1800만달러선에서 장기계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델가도의 1700만달러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인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이 실력에 따라 많은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그들의 연봉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 시간당 1달러 인상도 고용주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2년간에 걸쳐 50센트씩 나누어 올려 받게되는 시간당 5달러75센트의 최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있어서 1800만달러다, 2000만달러다 하는 소리는 은하계 저편의 이야기일 것이 틀림없다.

선수연봉이 현추세대로 올라 간다면 메이저리그의 존립이 위태롭다. 조만간 3000만달러,5000만달러… 1억달러의 선수가 나올수 밖에 없다. 뉴욕이나 LA등 대도시의 돈많은 구단들은 뛰어난 선수들을 스카웃,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선수들을 뺏긴 중소도시 팀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왕년에는 미네소타나 디트로이트등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 중소도시 팀들은 겨우 마이너리그에서 쓸만한 선수들을 골라다 키워서 쓸만해지면 대도시팀에게 뺏긴다. 한물간 퇴물선수로 로스터를 채우고 경기를 치러야 하니 관중의 발길이 뜸해지고 관중이 없어 적자가 누적되니 좋은 선수 불러올 능력이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과연 양키스같이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이 계속 월드챔피언을 독차지하는 것이 메이저리그 야구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 뉴욕과 뉴욕이 맞붙은 이번 월드시리즈 시청률이 사상최저였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몰락이 오기전에 리그 관계자와 구단주, 그리고 선수들 모두 힘을 합쳐 천정부지로 치솟는 선수연봉에 어떤 형태로든 고삐를 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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