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례좌담

2000-10-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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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민주 양당 후보간의 엎치락 뒤치락이 막판까지 계속되며 어느 때보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 캠페인에 얽힌 뒷이야기와 선거 결과가 미칠 전망등을 본보 논설·편집위원들의 좌담을 통해 엮어 본다.

참석자.
옥세철 논설위원
박덕만 편집위원
민경훈 편집위원
권정희 편집위원


▲민경훈 편집위원 - 이번처럼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선거는 최근 들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여름까지 부시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 같더니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에는 고어쪽으로 기울다가 요새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접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떨어지는 사람은 억울해서 밤에 잠이 안올 것 같습니다.


▲옥세철 논설위원 - 올 대통령선거가 지난 1960년 케네디대 닉슨의 대결 못지 않은 박빙의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일찍부터 나왔지요.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각종 여론조사들은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양 후보의 지지율이 백중인 것으로 밝히고 있어 이 예상은 맞고 있습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 고어로서는 참 답답한 노릇일 겁니다. 고어야말로 명실상부한‘준비된 대통령’아니었습니까. 92년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선보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클린턴보다 고어가 더 대통령감 같다는 말을 했었지요. 게다가 재임 8년동안 역대 그 어떤 부통령보다도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지금쯤 고어에게 백악관은 떼논 당상이라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군요.

▲옥 - 올해같은 접전상황에서는 TV토론이 대선의 흐름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도 아닌 것같아요. TV토론의 중요성을 양 후보진영 모두 너무 잘 알아 철저한 대비를 한 탓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TV토론으로 덕을 본 후보는 부시같아요. 이슈제기등 각론성 전투에서는 분명히 고어가 이겼는데 전체 전황은 어찌된 셈인지 부시에게 유리하게 전개된게 3차에 걸친 TV토론의 결과입니다.

▲박덕만 편집위원 - 고어가 리버맨을 러닝메이트로 택한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WASP(앵글로색슨계 신교도 백인)들이 만에 하나 유태계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드러내놓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여론조사 응답과는 달리 상당수의 민주당지지 백인표가 ‘그런 꼴 보기 싫어’ 부시에게로 돌아서지 않을까요. 게다가 리버맨이 과거 흑인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에게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이던 흑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안심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권 - 고어가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마디로 세일을 못하기 때문이지요. 세일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일 의사가 없는 것입니다. 클린턴·고어 행정부 8년의 치적이 얼마나 좋은 무기가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장기적 호황이 없었고, 교육, 환경, 범죄, 웰페어 … 정책들이 모두다 성공해서 국정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거전 카드로 전혀 활용을 안해요. 클린턴 이미지가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너무 조심을 하는 것이지요.

▲옥 - 앞서가던 고어가 얼마전부터 열세를 보이자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게 클린턴을 유세에 동원하라는 겁니다. 고어진영은 이 제언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막판 유세전이 고어대 부시가 아닌 클린턴대 부시의 대결 양상으로 변하면서 스캔들문제가 다시 불거져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섭니다. 악재라는 거죠.

▲권 - 미국 국민들이 클린턴의 사람됨됨이는 싫어하면서도 그의 정책에는 대개 찬성한다는 점을 고어진영이 좀 더 신중히 고려에 넣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사람 자체로는 거리를 두면서 클린턴 행정부 업적은 선거에 이용하는 그런 방법을 연구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옥 - 열렬한 클린턴지지 민주당 표가 쉽사리 고어 지지로 묶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제3당인 팻 부캐넌 지지표는 부시 지지표 잠식에 별 영향을 주 않는데 랄프 네이더 지지표는 고어 지지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민주당의 고민입니다.

▲민 - 이번 선거는 부시대 고어의 싸움이 아니라 고어대 고어의 싸움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나 두뇌에 있어 부시보다 한수 위인 고어가 고전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자충수를 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보스턴에서 열린 첫 번째 토론회에서 고어는 전당대회 이후의 우세에다 자타가 공인하는 토론의 명수라는 자신감이 곁들여져 ‘오늘로 부시를 밟아 버리겠다’는듯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그 때문에 하지 않아도 좋을 거짓말까지 하는 바람에 크레딧에 금이 갔고 지나친 자신감이 오만으로 비쳐 유권자들을 식상하게 했습니다. 그후 ‘새터데이나이트 라이브’에 고어의 오만함을 꼬집는 프로가 나갔는데 이를 본 고어가 풀이 팍 죽었다는 후문입니다. 두번째 토론에서 지나친 양순함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죠.

▲권 - 캠페인 초반에는 부시가 그런 풍자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랐지요. 부시의 경우는 주로 ‘무식’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아는 게 없다고들 비꼬았지요. 그럴만도 한 것이 부시의 경우는 텍사스주지사 하면서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대통령 만난 게 외교경험의 전부거든요. 후보가 아는게 없으면 없어서 싫다, 아는게 많으면 너무 아는 척해서 싫다니 국민들 심리가 묘하지요.

▲옥 - TV토론의 경우는 부시의 메시지가 더 잘 먹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TV토론이라는 것은 대통령감으로 유권자에게 선을 보이는 측면이 있지요. 그래서 이슈제기나 연설에 못지않게 중요한게 유권자에게 신뢰감과 친근감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부시가 앞선 것입니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기 앞서 감성적 동물입니다. 고어는 이점에서 손해를 본겁니다.

▲박 - 그런데 언론계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언론계에는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특히 각신문의 칼럼을 담당하는 중견 언론인들 가운데 유태인들이 많은데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성향입니다. 때문에 언론보도에서는 고어와 부시가 백중세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지만 결국 선거에서는 부시가 승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옥 -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과거 민주당의 아성으로 간주됐던 중서부지역에서 부시가 이외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시건, 위스컨신, 미네소타등 중서부지역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경우는 84년에 레이건이 한번 있을까 할 정도지요. 그런데 선거유세 막바지에 부시가 오히려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어요. 일리노이주에서도 부시가 맹렬한 추격세에 있어요. 이변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고어는 안심할 형편이 아닌 것 같아요. 아직은 앞서 있지만 그 차이가 날로 좁혀지고 있어요.

▲ 박 - 그러나 우리 한인사회로서는 부시보다는 고어가 당선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계는 공화당정권때 어려움에 처해왔습니다.

▲ 권 - 소수계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민주당쪽이 강하지요. 캘리포니아에서 불법이민 근절 주민발의안을 통과시키고, 소수계우대정책을 폐지해 이민자와 소수계의 목을 조인 것이 모두 피트 윌슨 공화당행정부때 일어난 일 아닙니까. 90년대 중반 뉴트 깅그리치 공화당의회가 영주권자의 웰페어 혜택을 삭감해 한인노인들이 영어를 배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박 - 일부 한인들 가운데는 민주당의 소수계 우대정책으로 덕을 보는 것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지 한인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한인들 가운데는 스몰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많고 그 고객이나 종업원들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입니다. 그래서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대한 복지혜택 감축은 한인커뮤니티 경기에 직결됩니다. 사실 4.29폭동도 레이건-부시로 연결되는 공화당정권 기간 흑인등 소수계에 대한 복지혜택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결과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 화풀이를 백인들이 아닌 만만한 한인들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부시가 집권할 경우 다시 한번 그같은 사태가 되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흑인, 히스패닉등이 주류를 이루는 저소득층이 멀고 살만해져야 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도 먹고살기가 편해진다는 뜻입니다.

▲권 - 공화당이 잡고 있던 캘리포니아에 민주당 주지사가 들어선 것이 다 공화당에 대한 소수계의 분노 덕분이었지요.

▲민 - 한인사회에서도 과거 공화당 지지성향이 높았으나 이번에는 민주당 지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인 공화·민주당 관계자 모두가 인정합니다. 거기다 가주는 이미 고어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탓인지 한인사회에서는 올해 선거가 있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정치행사가 거의 없습니다.

▲박 - 그나저나 부시가 당선될 경우 미국이 너무 우경화할 것같아 걱정입니다. 지금 연방 상하원을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데, 부시가 당선돼 행정부를 장악하고, 임기가 다된 몇몇 대법관 자리를 우파성향의 판사로 임명할 경우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이 모두 보수파에 의해 장악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민 - 후보 지지도가 널뛰기를 계속하니 현재로서는 예측불허입니다. 표차가 워낙 근소할 전망이다 보니 전체 표수로는 이기고 선거인단수에서는 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120년전 클리블랜드와 해리슨 후보간의 싸움에서 클리블랜드가 전체 표수로는 이기고 선거인단수에서는 뒤져 낙선한 일이 있습니다. 미국 대다수 주들은 승자독식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가령 고어가 가주와 뉴욕에서 큰 표차로 이기고 접전이 치열한 대다수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지면 표를 더 얻고도 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대다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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