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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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이 싫은 노인들

2000-10-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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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강<몬테리 팍>

LA USC 병원에서 일하면서 가끔 겪는 일이지만 오늘도 의사 선생님의 통역을 돕고자 한인 할머니의 병실을 찾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막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절차였다. 할머니는 가정 형편상 병원에 더 오래 입원시켜 달라는 부탁을 거듭했다. 집에 돌아가면 기거할 독방도 없으며 온 식구가 모두 바빠서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같은 부탁을 의사에게 설명하기가 매우 곤란했으며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자신 마음이 무척 저렸다. 이제 의사의 치료가 끝났다고 말씀드려도 며칠이라도 더 머무르게 해달라니 병원 식사와 잠자리가 온 가족과 함께 하는 생활에 어찌 비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얼마전 분단 50년만에 다시 상봉하는 부모, 형제, 친지의 뉴스가 우리 모두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러니 가까이서 아니 우리 집안에 모시는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면 이 얼마나 복받고 감사한 일인가.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 생사조차 알수없어 애태우며 방문자 대기 명단에 등록을 한다. 하늘에 별따기 같은 추첨을 통해서 행운을 잡았다 해도 방문을 위하여 준비하는 경제적 부담, 시간적 문제 등을 생각하면 오늘 웃어른을 모실 수 있는 우리는 분명 큰 행운이며 감사한 일이다. 꿈에서 그리고 멀리서 찾으려는 행운의 열쇠가 바로 내 손에 쥐어져 있으니 말이다.


요즈음 흔히 신토불이라고 하여 온갖 생선, 과일, 약재는 우리 고유의 산물을 상급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우리의 뿌리며 순수한 신토불이 조상 웃어른께 경솔하게 대한다면 이 어찌 큰 모순이 아닐까. 흐르는 세월과 함께 저물어 가는 인생행렬에 동참하지 아니할 자 그 누구랴. 학교시절 읊조렸던 한편의 시조가 떠오른다.

“반가운 친구집에 들렸더니 쟁반에 정성스럽게 내 놓은 잘 익은 감이 참 맛있고 좋아도 보이는구나. 몇개 얻어서 품에 안아 가고 싶으나 돌아가서 반길 부모님이 안계시니 얻어간들 무엇하랴”는 내용이다.

과연 그렇다. 가는 세월 그 누구인들 잡아맬수 있으며 덧없다 아니하겠는가. 지나간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며 미래에 대한 지나치게 황홀한 꿈도 접어두고 오늘 내 자신의 삶의 보금자리, 가정을 여물게 꾸며 가는 것이 알찬 행복이며 참 삶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방탄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값진 보석보다 내 손가락에 자리잡은 그이의 은은한 실반지 한쌍이 나에게 더 값진 사랑의 보물이 아니겠는가.

멀리서 찾아 효도하려는 효성에 앞서 내 현실을 바르게 살펴보면서 웃어른들께 공경하는 화목한 가정, 값진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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