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중한 말년을 도박으로 탕진해서야

2000-10-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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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처음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과가 좋게 나오면 그동안의 고생은 잊혀진다는 뜻이다.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소중하지 않은 시기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노년만큼 중요한 때는 없다. 젊어서의 한 때 실수는 나중에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말년에 겪는 불행은 회복하기가 힘들다.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LA 한인사회에 노인들의 도박이 부쩍 성행하고 있다.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라스베가스까지 노인들을 버스로 실어나르는 단계를 지나 한인타운 일부 주택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장소를 빌려 주는 마작업소까지 생겨났다. 일부 노인회관은 아예 도박장인지 노인들 휴식처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자식들은 찾아 오지도 않고 손자 손녀는 말조차 안통하고 돌봐 주는 사람도 없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쩔수 없이 빠져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라 변명해도 웰페어로 받은 푼 돈을 도박으로 날리고 한달 내내 멍청하게 지내다 다시 체크가 오면 들고 달려 가는 노인의 모습은 한인사회의 비극이다. 정부돈을 받아 이민온 노인들이 상습 도박을 벌인다는 사실이 미국인들에게 알려진다면 당장 웰페어를 끊자는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미국은 노인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잘 돼 있다. 등산이든 화초 가꾸기든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치있는 취미생활을 펼수 있다. 시간여유가 있는 한인 노인들이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와 돕는 미국 노인들의 모습을 배울수만 있다면 본인을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이미지를 위해서나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다.


중범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강력범중에 처음부터 흉악한 범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사람은 없다.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수렁에 빠져 드는 것이다. 도박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자 대부분이 처음 장난삼아 손을 댔다 패가망신한다며 심신이 일반인보다 약해진 노인들이 도박에 빠져 드는 것은 재정적 파탄은 물론 생명을 단축시킬수 있는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노년은 한평생을 정리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시기다. 이런 귀한 시간을 도박으로 허비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부끄러운 일임은 물론 스스로 인생을 망치는 행위다. 극소수 한인 도박 노인들이 하루 빨리 악습을 버리고 보람있는 말년을 설계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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