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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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돕기에 ‘사이비’ 라니

2000-10-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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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동철<목사>

살아있는 우리들 가운데 선택받은 소수가 미국에서 편히 살고 있는 것은 누군가 지구 저편 끝에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고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몸의 한 부분이 아플 때, 다른 부분들이 성한 것은 분명히 그 아픈 부분이 몸 전체를 대신하여 고통을 감당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아픈 부위가 몸 전체를 위하여 희생하기를 멈춘다면 그 순간부터 질환은 온 몸으로 퍼지고 끝내는 몸 전체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에 드나들며 탈북자들을 만날 때마다 "만일 내가 북한에 태어나고 저이들이 남한에서 태어났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면 지금 저이들과 나의 위치가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수없이 자주 해 본 기억이 난다. 오직 태어난 곳이 남과 북으로 갈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들은 그토록 처참한 삶을 살아야 하고, 나는 미국에서 호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공평치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한 사람만이 느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괴이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남북화해와 통일운동의 분위기가 그것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조국(북한)의 배반자들’이므로, 이들을 위하는 것은 곧 김 정일의 비위를 거슬리는 일이고, 따라서 간신히 이룩해 놓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과업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라는 논리가 우리 사회 한 쪽에서 막강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선교사들중 ‘생색내기 탈북자 돕기나 돈벌이를 위한 사이비들’도 있다는 글이 신문지상에 실리기도 한다. 바로 지난 주 한국일보 오피니언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에 그같은 글이 실렸다.

탈북자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받고, 가장 천대받으며 살아오다가 더 이상은 어떻게 살아볼 방도가 없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소위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등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늘날 이들은 북한 인구의 1%인 20여만 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상태이다. 한 마리의 길잃은 양과 같은 이들을 전심으로 돕는 일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보다 미국에서 편히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이 앞장서서 해야만 하는 우리들의 의무이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우리 민족에게 닥칠 것은 통일은커녕 그들에게서 시작된 질병이 온 몸에 퍼져 민족 전체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비참한 모습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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