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월

2000-10-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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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박흥진 (편집위원)

며칠전 월스트릿 저널을 들추다 뜻밖에도 시 한 편이 눈에 띄었다.

‘10월’(October)

지금은 당신의 생명을 잃을 때입니다/
비록 그것이 끝나지 않았을지라도/
지금은 굿바이를 고하고 죽음을 시도해 볼 때입니다/
10월입니다.


감미로운 첼로/
가로수 길들은 거의 모두 달콤함과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당신이 생명을 잃기 위해/
해뜰 녘에 당신의 시계를 벗어놓을 때/
당신은 비행기를 탑니다/
당신은 다시 내립니다/
당신은 그 장소에 도착합니다/
당신은 그 언어를 말합니다/
당신은 새 집에 살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오래 됐을지라도/
당신은 새 아내와 함께 살 것입니다/
비록 그가 너무 어릴지라도/
당신의 가냘픈 새 남편은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는 추위 속에 개를 산책시킬 테지요/
그는 난로 위에 음식을 요리할 것입니다/
그는 침대에 누운 당신에게 약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운타운 도시의 꽃시장의 새벽/노점상들이 막 문을 열었습니다/
꽃들은 너무도 신선합니다/테이블들을 장식할 레스토랑들이 저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윙하는 소리와 질주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개 달린 천사처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지나갑니다-그러나 멈추고 회전해 돌아섭니다/
이른 아침 서리 속에서 잘려진 꽃들을 사기 위해/
나는 당신을 위해 그것들을 삽니다/
나는 새벽의 당신의 금발을 위해 그것들을 삽니다/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젖가슴을 위해 그것들을 삽니다/
나는 당신 아름다운 마음을 위해 그것들을 삽니다/

시가 몹시 서늘하고 운명적이며 또 로맨틱하고 육감적이다. 시를 쓴 프레데릭 사이델이라는 이름이 생소해 아이오와 대학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그에 관해 물어봤다.

아들이 팩스로 보내온 답장에 의하면 사이델은 지극히 사적인 사람이어서 지금까지 한번도 대중 앞에서 시 낭독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이델은 어두운 20세기의 시인으로 읽기에 결코 ‘재미 있는’시인은 아니나 때로 멜랑콜리하고 명상하는 듯한 비가적 톤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고 한다.

사이델은 20세기의 어두운 멜로디와 기술적 물질주의에 취해 자멸 속으로 달려가는 현대 세계를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사이델은 왜 10월을 굿바이를 고하고 생명을 잃을 때라고 했을까. 그것이 조락의 계절이어서 그랬을까. 그러면서도 왜 시는 끝에 가서 기대와 희망에 차있는가. 그것은 조락은 재생의 준비행위여서일까.

10월은 나처럼 인생의 가을 문턱에 들어선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저물어 가는 게 편안하고 반갑기까지한 시간이다. 삶의 피곤들이 낙엽처럼 땅에 깔리면서 벌거벗은 마음이 시려워 몸까지 부르르 떨린다.

10월은 ‘당신의 생명을 잃기 위해 시계를 벗어 놓을 때’라는 말이 정말 알맞은 달이다. 잃어버리지를 못해 힘겨워하는 우리들이 이것저것들을 잃어버릴 때이다.


10월은 고국에서는 만산홍엽의 계절이요 LA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볼게임과 호박의 달이다.

내게 있어 10월은 음악의 아다지오의 달이다. 느릿느릿하니 서행하며 우울하고 서정적이요 또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다지오는 현악기들의 고해성사의 음성과도 같아 성찰하는 계절인 가을과 잘 어울린다.

아다지오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새뮤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다. 영화 ‘플래툰’에서 사용돼 잘 알려진 풍성한 하모니의 음악인데 클라이맥스가 대단히 강렬하다. 슈베르트의 아다지오 E플랫 단조도 가을밤에 들으면 좋을 소품.

아다지오 중에서 가장 여성적이요 병약하고 상심하는 것은 말러의 제5번 교향곡 제4악장 아다지에토일 것이다. 말러가 후에 아내가 된 알마에게 바친 연서라고도 하는 아다지에토는 현들이 시종일관 머뭇거리며 쓸쓸해하고 탄식하고 있다.

곡이 하도 아름답고 유명해 이 악장(10여분)만 따로 연주되기도 하는데 가녀리고 민감하면서도 간결한 멜로디들이 마치 깊은 바람에 몰려다니다 우수수 지는 듯해 적적하기 짝이 없다. 이 곡은 비스콘티의 영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됐고 로버트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엄청나게 느리게 연주해 느림보 악장의 대명사처럼 됐다. 여러번 들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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