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브라이트가 보지 못한 평양

2000-10-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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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스티븐 머프슨·워싱턴포스트)

60피트 높이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웅장한 김일성 묘지등을 끼고 계속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평양의 외각지대로 빠지게 된다. 거기서 목격되는 것은 전혀 다른 북한의 모습이다.

한 여인이 길바닥에 떨어진 몇 안되는 옥수수 알을 쓸어 담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서 이 몇 안되는 옥수수 알은 아주 소중하다. 조금 더 가다보면 두명의 북한군 병사가 다 낡아빠진 픽업트럭의 엔진부문에 머리를 디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무너진 북한 경제를 상징한다. 계속 드라이브를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짐보따리를 들고 버려진 하이웨이를 따라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에서 거의 유일한 수송수단은 단순히 걷는 것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평양방문기간동안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다. 대리석이 깔리고 산들리에가 휘황찬란한 켜진 방에서 올브라이트는 김정일과 국제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김일성광장 인근의 제일 백화점 쇼윈도우에는 밝은색 장화가 진열돼 있다. 이 장화는 1년반이상 같은 장소에 놓여 있다. 또 백화점 선반들은 상품으로 꽉차 있다. 빈곤에 찌든 북한사람들이 살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길건너에 지하철 입구가 보인다. 오늘은 지하철이 잘 운행되는 편이다. 그러나 정전으로 지하철은 자주 마비된다. 한번 정전이 됐다하면 한시간 반정도 지하 수십미터의 칡흑같은 어둠속에 갇히는 것은 예사라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그나저나 서둘러 직장에 갈 필요도 없다. 전력부족으로 대부분 공장이 가동이 안돼 할 일이 없어서다. 오늘따라 한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발전소 굴뚝이다. 지하철, 인근 아파트빌딩 그리고 분수대와 각종 기념물 장식등에 전력을 대주는 발전소로 올브라이트 일행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가동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의 날씨는 아직은 따뜻한 편이어서 에너지 부족의 심각성을 덜 느낀다. 겨울이 닥치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지하철로 들어가려고 역앞에 긴 줄을 선다. 집에는 난방장치가 없어서다. 또 1,000영명의 사람들로 공중 풀장은 만원이 된다. 더운 물이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병원도 다를 게 없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겨울에는 환자들이 수술대 위에서 떨고 있는 게 고작이다" 의료봉사차 북한에 와있는 독일의사 노르베르트 볼레르첸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예 병원에 갈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낙태를 한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아야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이 아닌 대량 파괴의 사회다" 볼레르첸의 지적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평양을 벗어나면면 수십만의 북한 군 병사들이 죽 늘어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띤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 이들에게는 장래도 희망도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에 따르면 전체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자포자기의 삶을 살다보니 폭음을 일삼고 그 결과 간질환이 주 사망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60세를 넘긴 환자는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산당 간부, 군고위층등 체제를 떠받들고 있는 계층의 생활은 전혀 다르다. 평양의 외국인들은 이들의 거주지역을 ‘자금성’이라고 부른다. 이 ‘자금성’으로 통하는 길은 외부인의 접근이 금지돼 있다. 단지 벤츠를 타고 오가는 이 ‘자금성’ 주민들의 모습만 먼발치서 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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