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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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현상과 ‘YS는 못말려’

2000-10-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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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인간에게 노화현상이 일어나면 우선 겉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육체의 노화에서 제일 먼저 시그널이 오는 것은 피부에 주름이 늘고 치아가 빠지는 현상이다. 이가 여러개 빠지면 얼굴 아랫 부분이 짧아진다. 눈꺼풀은 두꺼워지고 눈자위는 처지며 척추의 디스크가 내려 앉아 남자는 10cm, 여자는 15cm 정도 상체의 길이가 줄어든다. 또 어깨는 좁아지는데 골반의 넓이는 늘어나는 기형을 보이고 뇌의 산소 소비량도 줄어든다.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다. 나이 먹으면 마음에 주름살이 생긴다. 박력있고, 명랑하고, 포용력 있던 성격은 어디로 가고 피해망상과 의심으로 가득찬 고집불통의 성격으로 조금씩 변해 간다. 누가 조금만 뭐래도 섭섭하고 화를 내게 된다. 성격 노인현상의 특징은 유머와 웃음을 잃어 버렸다는 점이다.

동물에게는 노인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늙어 가는 모습에 억울해 하고 상심해 한다. 할리웃의 수퍼스타였던 그레타 가르보는 ‘두개의 얼굴을 가진 여인’이라는 영화를 끝으로 1941년 은퇴한후 1990년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늙고 추한 얼굴이 ‘그레타 가르보’라는 신화적인 이름에 상처를 줄까봐 걱정했으며 팬들에게 심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영구히 보존하는 방법은 숨어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젊음은 왜 좋은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력은 부드러움과 유연함에서 나온다. 시드니 올림픽 중계를 본 사람이면 소련과 루마니아, 중국의 여자체조선수들이 동작의 유연함을 통해 생명력이 넘쳐 흐르고 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닭고기나 쇠고기도 나이 먹은 것은 질기기만 하고 맛이 없다.

노화현상도 하나의 변화다. 그런데 노인들은 변화에 적응하는 가치관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고집이 생기게 되고 주변으로부터 왕따당하게 된다. 권력을 잡았던 사람일수록 정신적인 노인현상이 심하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마저 말년에 노인현상을 일으켜 망신스런 일들이 많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후 영국국민에게 아무런 전후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총선거애서 패해 수상자리에서 물러났다. 51년 보수당이 승리해 처칠은 다시 수상이 되었으나 그는 이미 이전의 처칠이 아니었다. 남을 짜증나게 할 정도로 말이 많아지고 참모들의 의견도 듣지 않았으며 각의 도중에도 졸았다. 몸은 약해지고 고집은 세지고 능력은 점점 상실되는 현상이 계속되다 드디어 공식만찬장에서 쓰러진후 마지 못해 은퇴했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인 시오도어 루즈벨트도 말년에 정신적인 노인현상에서 헤어나지 못해 자신이 일구어 놓은 신화를 스스로 허물어 버렸다. 공화당원인 그는 두 번이나 대통령을 지내고도 정치계를 떠나지 못해 세 번째는 진보당을 스스로 창당해 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신을 중심으로 한 자원군을 편성하려다 제지당했으며 윌슨대통령에게 비난을 퍼붓는등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TR(시오도어 루즈벨트)의 정신상태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를 토론한 정신과 의사 맥클레인 해밀턴과 모턴 프린스의 논쟁은 미국의 화제였다. 어떤 시카고 부동산 업자는 “만약 TR의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에게는 1,000달러를 주겠다”는 광고까지 신문에 냈을 정도다.

소신이 지나치면 고집이 되고 고집이 지나치면 주책이 되는 법이다. 정치에서만 노인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계에서, 가정에서, 단체에서도 ‘YS는 못말려’식 좌충우돌이 발생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 모든 것이 변화에 적응 못하는 마음의 노화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인현상이란 결국 자기가 자신의 노예가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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