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지티브’냐 ‘네거티브’냐

2000-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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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소셜워커>

벌써 오래전 유학 초기에 벌어진 일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예방접종 증명이 필요해서 검사를 받았다. 며칠 후 간호사는 검사결과를 전화 응답기에 남겼는데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뭔가 마지막 부분에 네거티브(negative)라고 했다. 늦은 시간이라서 병원에 확인할 수도 없었고 응답기에 남겨진 유창한 영어를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네거티브”하다는 단어가 귀속을 맴돌았다. 혹시 무슨 병이 있다는 것인가? 학교에서 입학허가를 취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달려가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들은 후에야 “네거티브”는 병균에 감염되지 않음을 뜻하고 오히려 “파지티브”가 병균의 보유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오해하기 쉽다. 현재 공공 보건실에서는 HIV/AIDS를 비롯한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에이즈 예방구호는 “파지티브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Positive is not always good!)이다.

그동안 많은 한인들이 질병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를 보았다. 우선 AIDS와 HIV의 차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는 인체의 면역기능을 약화시키는 균으로서 차후에 에이즈라는 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HIV 파지티브, 즉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은 당장 에이즈에 걸려서 병석에 눕는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건강상태와 생활습관에 따라 몇년에서 10년까지의 잠복기간을 거쳐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HIV 감염률은 소수인종에서 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에이즈는 아시아 이민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아시안 에이즈 환자를 약 8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화적 특성상 많은 숫자의 누락을 감안한다면 실제 감염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한인사회에서 발견된 HIV 감염자는 적지만, 에이즈는 이제 다른 민족의 문제나 동성연애자들과 일부 특수계층만의 문제가 아닌 평범한 우리 가정에도 다가올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HIV의 감염 경로는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평상시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HIV는 혈액이나 정액 및 질 분비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며, 또한 임산부를 통해 아기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따라서 안전하지 않은 성행위나 주사바늘의 공동 사용은 HIV 감염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론 HIV 바이러스는 일상생활에 의한 접촉, 예를 들면 재채기나 기침, 변기나 목욕탕의 공동사용, 포옹이나 가벼운 입맞춤, 식기의 공동사용, 곤충에 물리는 것, 소독된 의료기기 사용 등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HIV에 감염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안전하며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HIV에 걸린 사람들은 우리의 따뜻한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다. HIV/AIDS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반드시 예방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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