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토끼와 거북이의 주식 투자

2000-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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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위원)

나이 먹은 사람이 흔히 하는 얘기 가운데 ‘옛말에 그른 말 없다’는 것이 있다. 살면서 겪는 갖가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신통하게 거기 들어 맞는 속담이 있다. 일이 터진 뒤 ‘왜 그때 그 속담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하고 무릎을 친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속담을 줄줄 외고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을 사는데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속담중 상당수는 서로 반대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격언이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해 성공을 거두면 ‘용감한 사람만이 미인을 얻는다’고 칭찬하다가도 실패하면‘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비난한다. 이같은 현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속담은 일이 벌어진 뒤 설명을 하는데는 편리하지만 막상 결정을 내리는데는 큰 힘이 되지 못한다.
최근에는 좀 수그러들었지만 얼마전까지 한국이나 미국이나 주식이 붐을 이루면서 책방마다 주식투자 소개서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적이 있다. ‘주식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법’부터 ‘주식 투자 이렇게 해야 한다’, ‘투자가들이 지켜야할 철칙 xx개’등등 갖가지 타이틀을 단 가이드가 수없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 속담에서 나타나는 이율배반성이 투자에 관한 금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투자에 관한 조언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이익을 내고 팔아 망한 투자가는 없다’(Nobody went broke by taking profits)는 것이 있다. 일단 산 주식이 가격이 오르면 무조건 팔아 이익을 챙기란 얘기다. 10달러에 산 주식이 20달러가 됐을 때 팔았는데 그후 주식이 1달러로 떨어졌을 경우 이 격언은 신의 계시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달러에 팔아 충분한 이익이 남았다고 좋아했는데 나중에 이 주식이 30달러, 40달러를 거쳐 100달러가 넘어 가는 경우다.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판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있을 때 동료 투자가가 들려 주는 충고가 있다. ‘떨어지는 주식은 빨리 팔고 올라가는 주식은 가만 두라’(Cut your losses short, let your profits run)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Buy low, sell high)라는 계명도 마찬가지다. 우선 ‘싸게 비싸게’를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문제다. 흔히 소득에 대한 주가 비율(P/E), 주가에 대한 배당금 비율, 장부상 가치에 대한 주가 비율등을 기준으로 삼지만 이런 수치를 알았다고 해 싸다 비싸다는 판단이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주가 평가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싼 것 같지만 가격이 더 떨어진 뒤에 보면 비싸게 산 것 같고 지금은 비싼 것 같지만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싸게 산 것 같이 보인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또 있다. 주가가 쌀 때는 악재에 악재가 겹쳐 전망이 극히 어두울 때다. 돌이켜 보면 주식투자의 적기는 1982년이었다. 그 때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777 선이었으니까 그 때 산 사람은 지금 12배의 이익을 남길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주식을 갖고 있던 사람은 극소수다. 70년대의 오랜 불황을 겪으면서 미국 주가는 82년 이전 16년간 한푼도 오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전망이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주가가 쌀 때 사기 어려운 것처럼 비쌀 때는 사지 않기가 어렵다. 호재에 호재가 겹치고 ‘불경기란 이제 사전에 없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현 투자가의 대부분은 장미빛 경기전망이 신문지상을 가득 메우고 다우가 4000선을 넘어 폭등할 때 군중심리에 휘말려 주식을 산 사람들이다. 특정 회사를 찾아가 직장 분위기를 살펴 보고 그 회사가 그 분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연구한 후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스베가스에서 전문도박꾼들의 포커대회가 열리는 것처럼 주식투자자들 사이에도 주식 투자 챔피언 대회가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대회 우승자중 상당수가 해병대 출신이란 점이다. 해병대는 극한 상황에서의 극기력을 중시하는 집단이다. 폭락과 폭등이 가져 오는 감정적 기복과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 통제력이 투자 성공의 필수 조건의 하나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가들이 대부분 재산을 날리는 것도 빨리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자기 통제력을 잃고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포브스지는 매년 400대 부자 리스트를 뽑는다. 벼라별 비즈니스로 돈 번 사람이 다 있지만 주식 투자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다. 그중 대표적 인물인 워렌 버핏은 투자하기 전 그 회사의 모든 것을 철두철미 조사하는 대신 한번 산 주식은 팔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가 비즈니스 오너란 기분으로 주식을 사라’는게 그의 철학이다. 리스크가 큰 주식으로 단판 승부를 내려는 토끼보다 우량주와 함께 천천히 걷는 거북이가 이긴다는 것은 인생뿐 아니라 주식투자에도 함께 적용되는 진리인 모양이다.

kyung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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