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언어를 보급하자

2000-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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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 이기영<본보 뉴욕지사 주필>

자기 나라의 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민족으로 프랑스인을 따를 민족이 없다. 프랑스인들은 외국어를 알더라도 외국인에게 자기 나라의 말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 가는 관광객들은 애를 먹는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문화가 가장 우수한 문화라는 긍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 언어를 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언어가 언제부터 어떻게 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연구 결과가 없다. 구약성경에는 인간이 하느님에게 대적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을 때 하느님이 이를 막기 위해 언어가 소통되지 못하도록 갈라놓았다고 한다. 어쨌든 지역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민족의 특성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민족에 따라 언어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언어의 차이는 곧 민족의 차이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자기네 종교와 동일한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유대인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언어가 같은 사람을 한 민족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세계의 많은 언어는 그 어원을 근거로 12개 종류로 크게 구분되는데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한다. 동양의 몽고어와 만주어, 서양의 헝가리와 핀란드어가 우랄 알타이어계라고 하니 이들 민족이 우리 민족과 가까운 편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언어가 민족의 특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특정 민족이 중심을 이루는 나라들마다 자기네 언어의 세력을 넓히는데 부심했다. 근세 이후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결과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의 언어인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다. 영어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공용어일뿐 아니라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필리핀 등과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동남부 일대에서 널리 통용된다.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특히 인터넷 시대에는 영어가 인터넷 사이트의 언어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영어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세력을 떨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공산주의 시대의 러시아어도 당시 그 민족의 위세와 함께 번영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자기네 언어를 우리 민족에게 강요했던 것도 우리 민족을 없애버리기 위한 술책이었다. 세계의 인구 대국인 중국이 앞으로 세계 강국이 될 것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본토의 인구와 세계 각 지역의 화교들이 중국어로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이 미국인이냐 한국인이냐를 구분할 때 미국 시민권의 취득 여부를 기준으로 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 기준일뿐 내용적으로 보면 영어로 생활을 하느냐, 한국어로 생활을 하느냐로 구분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기준이 될 것이다.

한국어를 모르고 영어만 쓰는 한인은 이미 미국의 문화권에 들어간 미국사람이며 영어를 모르고 한국어만 쓰고 있다면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문화권에 있는 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이라면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밖에서는 영어를 쓰고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쓴다면 더욱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자는 것은 이런 한국계 미국인을 만들자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무역 등 사업상의 필요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학문을 위해 배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제결혼을 한 경우 가족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배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든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일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낯선 외국인이 한국말을 한 마디 던질 때 그 사람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언어의 마력이다.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은 그만큼 우리와 가까운 외국인이다.

그러므로 한인들이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어가 이 땅에서 비록 공용어는 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 민족과 우리 문화가 그만큼 세계로 뻗어가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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