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권탄압 먼저 거론해야

2000-10-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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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프레드 하이앗, 워싱턴포스트 칼럼>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장려하기 위해 미국은 때로 악당들과도 만나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미행정부가 진실을 외면해야 한다면 이는 무언가가 잘못돼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이달 말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지도자의 정상회담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 김정일은 지난 1983년 한국의 각료 4명과 대통령 보좌관 2명등 21명이 숨진 아웅산 폭파사건의 배후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87년에는 2명의 간첩을 보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 115명을 살해한 일에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직까지 이들 두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김정일은 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억압을 받고 있는 국가의 대표자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 장쩌민 심지어 사담 후세인보다도 더 잔혹하게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민간항공기 폭파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리비아에 요구해왔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대화를 거부했으며 쿠바를 고립시켰다. 인권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미얀마 지도자들의 워싱턴행도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북한의 조명록 차수 방미 시에는 붉은 카펫을 깔고 환영했다. 왜 미행정부는 북한의 심각한 인권 탄압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가.

얼마전 만난 미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버마는 군사적으로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반면에 북한은 핵기술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위협인 것이다.

미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에는 명백한 위험이 존재한다. 그 하나는 미얀마 같은 국가들이 미국의 관심과 식량지원, 제재조치의 해제 등을 얻기 위해서는 군사적으로 위협해야 한다는 것을 - 즉, 공갈이 통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또다른 위험은 2,200만명의 국민을 하나의 고립된 수용소에 가둬놓고 있는 독재자의 통치를 연장시키는데 일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을 지지하는 견해도 있다. 미-북한 정상회담이 김정일의 억압통치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전쟁발발의 위험도 감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한국의 민선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의 접촉을 원하고 있다. 당사자인 한국의 견해에 비중을 두는 것은 옳다.

그러므로 클린턴이 살인자를 방문하는 것으로 임기를 마치는 것도 무방하다. 강대국의 외교정책이 항상 일정할 수만은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북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가. 이라크, 벨로루스 심지어 중국에 대해서도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미국이 새로 사귄 평양의 펜팔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못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로널드 레이건도 소련과 협상은 했지만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호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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