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득보다 실이 많은 모험

2000-10-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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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도널드 에머슨 (스탠포드대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메릴랜드에서 이집트, 브루네이, 베트남을 다니며 정상회담 갖기에 분주한 클린턴 대통령이 이번에는 평양을 방문, 김정일을 만나는 것으로 자신의 화려한 외교정책의 대미를 장식할 모양이다.

정상회담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실패의 가능성이 회담을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준비의 결여가 회담을 망치게 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도 금년 말 북한에서 있을 클린턴-김정일 회담의 사전준비를 위한 것이다.

클린턴은 반드시 북한을 방문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북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미국이 치러야 할 대가보다 커야만 "예스"라고 답할 수 있다. 아직은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이 지나친 서두름으로 인해 깨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북한 정상회담에는 세가지 대가가 따른다. 첫째, 현재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중 하나인 북한을 인정해 주게 되는 일이다. 북한 방문으로 인해 클린턴의 외교업적이 약간은 빛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자랑함으로써 김정일이 얻는 선전 효과가 훨씬 크다. 또한 클린턴의 방북은 핵무기 개발위협을 통해 서방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낸다는 김정일의 정책을 승인해 주는 셈이 된다. 이는 명백히 평양측에 유리한 일인만큼 평양측으로부터 핵 및 재래식 무기의 감축과 경제개방등 가시적인 조치를 얻어내는 일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두번째 대가는 남한 및 일본과의 관계다.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서울과 도쿄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이들 두나라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장기적인 성공에 필요한 이들의 호응을 얻는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미-북한 정상회담은 북한과 주변 국가가 모두 혜택을 얻는 ‘읜-윈’ 차원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마지막 대가는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후임 대통령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평양회담이 성공을 거둔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준비가 안된 채 치러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1월의 차기 대통령 취임일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임기 말의 클린턴 대통령이 그같은 주요한 외교적 결정을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클린턴 대통령 진영에서는 평양방문의 득과 실을 계산해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한번 고려해 봐도 좋을 것이다. 클린턴은 오는 11월15~16일 브루네이의 수도 반다르 세리 베가완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회의(APEC) 연례 정상회담에 참가할 예정이다. 북한은 APEC 회원이 아니지만 이번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옵서버나 게스트로 초청할 수 있을 것이다. 태평양연안 국가들간에 경제성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미-북한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보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북한의 독재자에게 미국 대통령을 초청해서 만났다는 무용담을 제공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이 지역 국가들간의 상호협력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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