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에 너무 굽신거린다

2000-10-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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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짐 만, LA타임스 기고)

지난 주 백악관이 대변인이 한 한마디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환상과 도덕적 무감각증에 빠져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제이크 시워트 대변인은 기자들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는 열심하면서 쿠바에 대해서는 냉담한 이유를 묻자 북한은 우방에 대해 위협적인 존재지만 쿠바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거기서 그쳤으면 괜찮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는 “북한 정권은 변화와 개방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카스트로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북한은 경제적 필요에 의해 한국과 미국과 관계개선을 추구하고는 있으나 정권 자체의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다(오히려 쿠바가 카스트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보다는 개방적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자체 작성한 인권보고서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말해 주고 있다. 올해 보고서는 북한이 독재정권이며 주민들이 가혹한 통제를 받고 있고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살인과 납치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과 접촉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루즈벨트와 처칠도 스탈린과 식사를 같이 했다. 현실주의적 노선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현실주의 차원에서 설명하지 않고 북한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잘못된 논리를 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그렇다. 상업적 이유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지지했으면서 말로는 이것이 중국의 인권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미사일 개발을 막는 게 진짜 목적이면서 북한 정권의 성격이 바뀌려 하고 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이같은 행정부의 잘못된 대북 인식이 초래할 위험은 다음달 클린턴이 북한에 간다면 더 악화될 것이다. 현 행정부 외교는 누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너무 치중돼 있다. 작년 윌리엄 페리 대북 조정관은 김정일 면담을 거부당했다. 조명록 군사부위원장의 클린턴 면담은 올브라이트로 하여금 김정일을 만나게 해준다는 묵시적 약속 아래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이 북한에 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항구적인 미사일 발사 실험 포기 약속을 받아내는 것일 것이다. 나중에 북한은 원조를 조건으로 개발과 수출 포기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북한에 갈만한 가치가 있을까? 북한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북한 정권의 정통성만 인정해 주는 꼴이 된다면 가치가 없다. 인권옹호 단체들은 유엔 감시요원을 파견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 행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현 행정부의 민주주의와 인권옹호는 발칸까지만 적용되는 것인가. 북한은 왜 빠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추한 독재정권을 미화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면 이는 미국적 가치를 진작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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