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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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는 ‘대우’ 문제

2000-10-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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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불투명성

▶ 제이 리<메릴 린치 재정자문가>

최근 대우차에 이어 한보철강의 매각마저 결렬되었다. 정권 말기마다 거의 공식화 되어버린 경제 위기의 재발이 우려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하마터면 추가 차입금 없이도 3년 후에는 정상화된다는 건실한 회사 하나를 헐값으로 외국 기업에 팔아 넘길 뻔 했쟎은가. 과연 뉴브리지라는 미국회사는 좋은 투자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고 한국정부로서는 알짜배기 회사 하나를 건진 셈인가?

투자를 목적으로 기업을 조사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그 회사의 재무재표를 분석하는 일이다. 국가마다 엄격한 회계기준이 있고 ‘공인된’ 회계사들이 매년 상장회사에 대한 감사를 하는 만큼 재무재표는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대우나 한보의 경우처럼 해외 매각을 앞두고 실사가 필요하다면 불행하게도 이 재무재표는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의 회계기준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회사창고에 직접 들어가 팔수 있는 재고가 얼마나 있는지 실제로 확인해 보고 매출 채권의 불량 여부도 일일이 조사해 보겠다는 뜻이다. 최근 대우계열 회사를 감사한 공인회계사와 회계법인이 무더기로 징계 판정을 받았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국가가 공인회계사의 신뢰성을 스스로 부인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읍참마속의 그 깊은 뜻이야 알수 없겠지만 언제는 소신껏 일하라고 공인해주고 이제와서 그 책임을 물어 징계한다니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보나 대우라는 기업의 가치 분석보다는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 분석이라는 것이 가능한가의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자기 기만과 허세가 부른 IMF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만큼 그런 사태가 재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외부적 불투명성은 부정확한 정보로 인하여 외부 투자자들에게만 그 손실이 끼치는 반면에 내부적 불투명성은 경영 부실로 이어져 기업의 존폐에 영향을 끼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그 회사의 사장도 건물이 무너지기 불과 몇 시간전에 탈출했었음이 밝혀졌다. 설마 오너가 보수비용이 아까워서 자기 백화점이 무너질 때까지 버텼겠는가. 결국 내부적 불투명성으로 인한 참사였다.

아직도 온 국민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IMF 구제 금융 사건도 그 규모가 국가적이라는 것뿐이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당시의 위기상황으로 인하여 가장 큰 반사 이익을 본 나라는 어딘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아시아지역 경제활동 둔화와 투자 침체는 곧 유가와 금리의 하락세로 이어졌고 90년대 말 미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 효과 덕분에 고성장 저인플레라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인터넷을 비롯한 신기술의 개발로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시아 경제위기의 암울함이 진하게 남아있다.

이번 한보 철강 매각에 관련된 뉴스를 접하면서 과연 한국 정부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수 있는 능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경제가 모든 가치를 좌우하는 현시대에 밤도 없고 낮도 없는 전쟁터에서 국민들을 보호하려면 적어도 자국 기업과 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화란 다름 아닌 적자생존의 법칙이 국경을 초월해서 냉엄하게 적용된다는 뜻이다. 승자에게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시장을 독점하는 상급이 따르지만 패자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이다. 이번 기업 매각 실패와 공인회계사들의 징계를 통해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경영 투명성이 확보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는 내다 팔 금반지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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