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 여성상사

2000-09-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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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하은선 기자 <특집부>

CNN 부사장 게일 에반스가 쓴 책 중에 ‘Play Like A Man, Win Like A Woman’이 있다. 지금까지 직장문화가 남성 중심으로 형성돼 왔고 여전히 남성적인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어 직장 여성들 상당수가 남성문화와 그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하면서 남성이 미리 만들어놓은 규칙을 파악하고 여성의 본 모습으로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한인사회에 자신을 알리는 게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던 올텔 정보서비스사의 진 하씨. 게임의 규칙까지 들먹인 끝에 인터뷰에 성공했다.
"여성으로 고위직에 오를 때까지 힘드셨죠?"

"우린 특수한 경우죠. 여자와 남자,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하씨는 자신이 회사에서 여성이기에 앞서 ‘이민자’였다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10대를 보낸 그녀는 15년이 지나서야 미국 직장문화에 불편함이 없는 팀 리더가 되었다. 다음에 부딪힌 건 ‘여자상사’라는 벽. "이민자여서, 여자여서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존하려니까 ‘My Style’이 생기더라구요. 한국여자 특유의 오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반가워야 할 한국 고객을 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같은 한국인이 결정권자니까 은근히 기대치가 높고, 여자니까 좀더 감정적이지 않을까 짐작하는 이들 상대하기. 처음 택한 방법은 한국을 모르는 척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참패로 끝나고 궁리 끝에 사적인 자리를 통해 친분을 쌓으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제시하는 방법을 취했다고 한다. 이젠 하씨의 스타일에 익숙해진 한국 고객들이 거래시엔 미국인처럼, 거래 후엔 어김없이 갈비집으로 향한다고 한다.

"우리 회사에도 이젠 한인 2세들이 많이 입사합니다. 물론 그 중에 여자도 있지요. 여기서 자란 한인 2세들은 미국인처럼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일하지요. 그렇지만 한국인으로 성공해야 할텐데 걱정이예요"

회사에서 여자상사를 만나는 게 희귀한 일이 아니듯 미국의 어느 회사에서나 위를 올려다보면 한국인 상사가 한 사람쯤 버티고 있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인처럼 일해서 한국인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등식이 성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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