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2000-09-08 (금)
크게 작게

▶ 뉴스 리뷰

▶ 급증하는 소수계 인구

케네디 대통령. 쿠오모 주지사. 하야카와 상원의원. 귀에 익은 명칭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감자기근으로 아일랜드계의 이민러시가 이루어진 게 1840년대. 이 때만해도 ‘케네디 대통령’이란 이름은 상상도 못했다. 이탈리아계 이민 전성시대인 20세기 초 ‘쿠오모’란 이탈리아계 이름이 주지사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비쳤다. 대선의 해인 2000년 시점에서 ‘마르티네즈 대통령’ ‘우 대통령’ 등의 탄생 역시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앞으로도 그럴까. 그렇지만도 않다는 전망이다. 아시아계와 라티노계가 주류를 형성한 제3, 제4의 이민러시와 함께 미국내 소수민족 구성비는 급격히 증가, 정치는 물론 미국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시간마다 125명, 하루에 3,000명, 한해동안에는 110여만명의 새 이민자가 미국땅에 도착한다. 223년 미국 이민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중 대부분, 더 정확히 말해 70% 정도는 결국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아메리칸이 된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전통을 지니고 이 땅에 들어온다. 새 이민러시와 새로운 긴장감이 전국적으로 팽배해지고 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가넷 뉴스 서비스가 마련한 이민특집 내용의 일부다.

이 특집기사가 특히 주목한 부문은 연간 100만이 훨씬 넘는 새 이민의 주류는 비백인계인 아시아계와 라티노계란 점이다. 또 이들의 이민러시와 함께 ‘백인 다수의 미국내 인종 구성비’가 머지 않아 깨질지 모른다는 데에 이 특집은 포커스를 맞추었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 전망은 이미 부분적으로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내 최대주인 캘리포니아에서 백인은 이미 1년 전부터 다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구 조사국이 뒤늦게 발표한 것이다. 센서스국 조사에 따르면 1999년 7월1일 현재 캘리포니아 인구는 모두 3,314만 5,121명으로 집계됐고 그중 백인인구는 49.9%를 차지했다. 라티노는 31.6%, 아시아계는 11.4%, 흑인은 6.7%로 구성비를 각각 차지, 전체 소수민족계 인구가 과반수를 넘어 섰다. 이같이 백인이 캘리포니아에서 소수인종이 되기는 1860년후 처음 있는 일로, 10년전만 해도 백인 인구는 전체의 57%를 차지, 굳건한 다수를 점했었다.

이는 이미 예견되어 왔던 일이다. 이민이 가장 많이 몰리는 주가 캘리포니아주이고 또 새 이민의 주류는 아시아계와 라티노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백인이 소수로 전락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로 보아왔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축소판이자 최다 인구밀집 카운티인 LA 카운티의 인구동향이 바로 그 전조로, LA 카운티에서 백인인구가 소수가 된 한 해는 이보다 10년전인 1990년이다. 이후 LA 카운티의 라티노와 아시아계 인구는 계속 급증, 지난 10년간 23.6%와 26.1%의 증가율을 각각 보인 반면 백인인구는 오히려 50만정도 감소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같이 백인이 소수가 되는 일이 전국적으로도 가능할까. 반세기 후, 그러니까 2050년이 지난 어느 시점 미국 인구의 과반수는 오늘날 소수계로 불리는 아시아계, 라티노계, 흑인계 등이 차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은 물론 이민 러시와 함께 아시아계등 소수민족계 구성비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현 인구동향을 근거로 내리고 있다.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1990년 7월1일부터 1999년 7월1일까지 미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인 그룹은 아시아계다. 무려 43%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총 인구수는 1,080여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라티노 인구 증가율은 38.8%에 총인구는 3,130여만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백인의 인구증가율은 7.3%에 불과했으나 총인구는 2억2,460여만으로 나타났고 흑인은 13.8% 증가율과 함께 총인구는 3,480여만을 마크, 여전히 최대 소수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구구성비는 앞으로 50년후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미국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은 현재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에서 라티노로 바뀐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인구의 1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라티노 인구 구성비는 2050년께 전체의 24%를 차지해 최대 소수민족으로 부상하고 흑인계 구성비는 15%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전체 미국인구에서 4% 정도에 불과한 아시아계 인구도 폭발적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세기 후 아시아계의 인구 구성비는 근 10% 선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을 종합하면 미전체 인구중 백인이 과반수의 자리를 내주게 되는 때는 2050년, 다시 말해 21세기가 후반기로 접어드는 어느 한 시점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게 일치된 지적이다.

민주주의 정치란 미상불 ‘다수결의 게임’이다. 해서 인구변화와 함께 우선적으로 변화를 맞게 되는 분야는 정치가 될 것이고, 또 소수계 인구가 과반수가 넘어선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변화는 불가피해졌다는 진단이다. "앞으로의 정치는 포용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과반수를 점하는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같은 변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정치적 동맹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백인계와 아시아계의 라인-업이 동맹의 한 축을 이루면서 파워를 공유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주 인구의 다수가 백인계에서 소수민족계로 바뀌면서 나오는 전망들이다. 변화는 정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소수계 인구의 급증은 정치는 물론, 사회, 경제, 문화, 심지어 언어 전통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전 분야에 엄청난 변화의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