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아계는 ‘영원한 외국인’ 인가

2000-09-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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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그는 1965년에 미국에 왔다. 4년만에 텍사스 A&M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1974년에는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1978년 그는 뉴멕시코에 정착하게 된다. 미국 원자력 기술의 ‘메카’로 불리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 핵연구소가 청빙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는 초고속으로 미주류사회에 자신의 입지를 세운 것이다. 대만에서 태어나 26세 때 미국에 와 10여년 남짓만에 학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누리게 되고 또 미국의 핵무기 기밀을 다루는 연구소의 주요 직책도 맡게 된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미국관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바로 그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한 이민 1세였다. 롤 모델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성공담은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험악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여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얼마후 체포된다. 스파이 혐의다. 그의 이름은 리원허(李文和)다. 이 저명한 중국계 과학자의 이름은 하루 아침 중국 스파이의 대명사로 바뀌게 된 것이다.

1999년 3월6일 뉴욕타임스는 특종을 터뜨렸다. 중국계 과학자인 리원허가 80년대부터 미국의 핵탄두 기술을 절취해 중국에 넘겨줬다고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이후 중국의 핵무기 절취사건은 미정가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공화당 다수의 의회는 ‘콕스보고서’란 이름으로 미국내 중국 스파이의 존재를 파헤치면서 이같은 안보상의 허점을 보완하지 못한 클린턴 행정부를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스파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미국과 중국관계는 날로 악화, 미국은 반중국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이와 함께 ‘리원허’란 이름은 1949년 소련에 핵무기 제조기술을 넘겨준 스파이로 체포돼 결국은 처형된 ‘로젠버그 부부’에 버금가는 이름이 된 것이다. 1999년 12월10일 연방검찰은 마침내 모두 59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그리고 나서 9개월이 지난 오늘 ‘리원허 스파이 사건’은 어찌된 셈인지 용두사미 같이 돼가고 있다. 그처럼 거창하게 떠들던 스파이 혐의는 슬며시 사라졌다. 증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여 보석을 허가하지 않았던 재판부의 입장도 바뀌었다. 구속 9개월만에 보석을 허용한 것이다.(담당 판사인 제임스 파커는 보석을 허용했으나 상급법원이 검찰측 이의를 받아들여 출감이 지연되고 있다.) 리원허를 중국 스파이로 얽어매기 위해 검찰측 증인들이 재판부에 거짓 진술을 한 사실이 탄로 났기 때문이다. 또 당초 뉴욕타임스등 주류 언론과 의회 특별위원회에 리원허가 ‘로젠버그 부부’에 버금가는 스파이인 양 정보를 흘린 ‘정보소식통’은 연방에너지부의 정보 부국장이었던 노트라 트루락으로, 그가 리원허를 중국 스파이로 몰아간 데에는 편집증에 가까운 인종적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서다.


이같이 검찰측의 무리수가 들통이 나면서 ‘리원허 스파이 사건’은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다. "올해 61세에, 암환자이고 또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것도 아닌데 리원허는 계속 독방에 하루 23시간씩 감금돼 왔다. 면회도 극히 제한됐고 하루종일 허리, 발 등에 족쇄가 채워졌고 감방을 나설 때에도 족쇄가 채워졌다.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리원허를 신문할 때마다 ‘로젠버그 부부처럼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겁을 주면서 스파이 행위 자백을 강요했다. 그가 컴퓨터에 다운로드 했다는 핵관련 정보라는 것도 체포 당시에는 과학저널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개된 정보였는데 체포후 관계 당국은 뒤늦게 기밀로 분류했다."

이보다도 이 사건이 더 쇼킹하게 전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판 공안세력’들이 보이고 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스파이 행위와 관련, 아시아계를 아예 도매금으로 몰아 표적수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멘탈리티가 수사기록등 관계 당국자들의 진술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인종차별주의에, 매카시즘적인 멘탈리티가 지배하다 보니까 스파이 용의선상에 오른 아시아계를 수사하는 데에는 위법행위도 괜찮다는 식의 위헌적 발상까지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아시아계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아시아계를 속죄양으로만 이용하려는 미국정치의 비정성이다. 정치헌금 기금 모임에는 아시아계 권익 보호의 참피언인 양 나서던 고위 공직자들이 아시아계 정치헌금 스캔들, 또 뒤이어 리원허 스파이 사건이 터지자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계는 영원한 외국인이다’-. 이 말이 새삼 와 닿는 느낌이다. (sechok@ko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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