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마약, 남의 일 아니다

2000-09-07 (목)
크게 작게

▶ 뉴스 에세이

▶ 이 정인(국제부 부장대우)

뉴스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믿을 수 없는 범죄나 잔인한 사건 이면에는 대부분 마약이 도사리고 있다.

마약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마약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까지 망쳐왔다. 이제는 그 폐해가 10대 청소년, 그도 중학교, 초등학교의 어린 나이까지 확산되고 있다.

마리화나나 엑스터시 등을 초·중·고교에서 구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마약 값이 엄청나게 비쌌던 예전과는 달리 몇 가지 화학물질만 준비되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일부 마약은 아주 싼값으로 학생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어린 그들은 마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용한다. 호기심에, 또 피어 프레셔 때문에.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끌어들인다. 더 나아가 돈을 만질 수 있는 수단으로 역시 죄의식이 없이 마약밀매를 하고 있다. 대학교 기숙사 내에서 마약을 팔다 학교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거나 중징계를 받는 한인대학생도 많아지고 있다.

나이트클럽 입구나 안에서 살 수 있는 엑스터시나 기타 마약을 복용하고 밤새 춤을 추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어 간 청소년들의 수도 비일비재하다. 마약의 부작용으로 사고를 내거나 자살하는 케이스도 엄청나게 늘고 있다.

마약이 죽음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이 되고 있다는 확인은 최근 발표된 LA카운티 검시소의 98년 한해동안의 부검 통계가 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체 8,963구중 사고 사망자는 2,489명이었고 그 중 967건이 마약남용이 원인이었다. 사고사중 두 번째로 많은 교통사고사 711건보다 훨씬 많다. 자살한 837명중에서도 115명이 마약을 죽는 수단으로 택했다.

그뿐인가. 이제는 청소년들이 마약 구입비용이 필요해서 강도를 돌변하거나 살인범이 되는 경우도 급증한다.

최근 글렌데일에서 일어난 14세 15세 청소년 피살사건 배경도 마약으로 추정된다. 살해용의자인 15세 소년은 돈을 빼앗으려고 하다 살인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아직 어린 그가 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약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그런 잔혹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웨스트힐스 야구리그에서 같이 뛰며 친해진 청년들이 공모하여 마약부채(마리화나)를 갚지 않는 형을 대신해서 15세 동생을 납치, 며칠동안 인질로 삼고 있다가 결국 죽였다.

살려 보내면 납치범으로 감옥에서 오래 살아야 하니까 차라리 죽여야 한다며 구덩이를 파서 재갈을 물리고 손을 뒤로 묶어 처형하듯 쏘고 묻었다.
한인사회도 최근 번듯한 외모와 부러울 정도의 최고 학벌을 갖춘 젊은 변호사가 여러 차례 은행을 턴 후 체포된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빛나는 젊은 나이와 어렵게 얻은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은행돈을 탐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역시 마약이다. 한번 탐닉하기 시작한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청나게 들어가는 마약자금을 채 구하지 못해 은행을 노렸다.


일생을 망쳐버린 그도 안타깝지만 좀더 나은 미래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 그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을 부모를 생각하면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부모는 그가 마약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글렌데일이나 웨스트힐스 청소년 피살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용의자들의 부모들도 한결같이 “뭔가 잘못 됐을 것이다. 착하고 얌전한 아들이 마약 때문에 그런 끔찍한 죄를 범했을 리가 없다”며 경악했다.

한인타운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거리를 밤에 지나다 보면 청소년들이 무언가에 취해 비틀비틀 댄다. 그들이 마약에 취해 있지 않더라도 바로 그 순간에 누군가 마약을 내밀면 그대로 그 물결에 휩쓸려 갈 것 같다.

학교가, 거리가 온통 마약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는데 자녀가 자신의 힘만으로 그 그물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전국 마약통제청에서 최근 벌이는 마약남용 예방 캠페인은‘자녀를 마약 남용의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부모가 마약에 관한 대화를 자녀와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재의 세태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부모는 인내심을 가지고 먼저 마약에 관한 대화를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마약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자녀가 어릴수록 좋다고 한다.

대체로 사전예방책에는 관심이 없는 한인들이지만 마약남용 예방을 위해 정부에서 한인사회 언론을 통해서까지 대대적 홍보를 펼치는 데는 부모나 교회나 학교나 단체가 모두 눈을 모으고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