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타운과 투서문화

2000-09-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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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에는 한인타운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못가죠. 자신을 비방하는 투서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질려 오히려 한인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한 고참 한인 경찰관의 말이다.

한인 경관들이 밑도 끝도 없는 투서에 시달리다 못해 다른 지역 전출을 원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케케묵은 이야기로, 한인들의 투서질은 이미 주류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고참 경찰관의 이야기는 또 이렇게 계속된다. "한인 단체마다 자신들이 대표라는 주장입니다. 가령 경찰이나 시당국이 어떤 한인 단체와 행사를 성대히 치르고 보도가 나가면 투서가 빗발쳐요. 그 단체는 대표성이 없고 자신들이 대표라는 거죠. 이런 투서들이 쌓일 때마다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한글 대사전에는 ‘투서’를 이렇게 정의돼 있다. "(1)드러나지 않은 어떤 사실의 내막을 적어서 자기 이름을 숨기거나 또는 밝히어 몰래 요로에 보냄. (2) 위협, 공갈, 비방, 항의 등의 부정적 내용으로, 어떤 대상기관이나 또는 대상자에게 비밀히 이름을 숨기고 써 보냄."


한인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투서는 아무래도 한글 대사전이 (2)의 뜻으로 정의한 투서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대개의 경우 모함성, 무고형의 투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유형의 투서가 하도 많이 나돌다보니까 가끔은 투서와 관련해 엉뚱한 일도 생긴다. 4.29폭동시 박종상 LA 총영사를 둘러싸고 발생한 투서 해프닝이 바로 그 스토리다.

당시 박총영사는 폭동이 발생하고, 타운 상가가 불타는 와중에 기민한 대응을 못했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해서 한국정부 요로에 쇄도한 게 ‘총영사가 교민을 방치하고 몸을 사렸다’는 투서. 관계 당국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 모종의 조치 강구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얼마후 또 다른 투서가 빗발쳤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명색이 한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총영사가 폭동구호기금을 가지고 타운내 단체장과 고-스톱 등 노름에 탕진했다’는 식의 내용. 도대체가 현실성이 없는 저질의 투서 내용에 정부 당국자들은 실소, LA 한인사회에서 날아온 투서는 모두가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강구중이던 모종의 조치까지 철회했다는 게 훗날 전해진 이야기다.

고질인 투서질이 다시 도지고 있는 모양이다. 김명배 LA 총영사가 취임 1년을 맞는 회견에서 남가주 한국학원 정상화, 4.29 장학재단 이사선정 문제 등과 관련해 투서에 시달리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잘못이 있다고 판단되면 따지고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음해성 투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투서가 만연하는 사회는 다른 말로 하면 ‘공갈과 협박’이 판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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