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잭웰치와 빌게이츠

2000-09-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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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철 (주필)

“세계제일의 부자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누구나 빌게이츠를 꼽는다. 그러나 “세계제일의 기업경영인은?”이라는 물음에는 ‘빌게이츠’가 아니다. 가장 돈많은 사람이 가장 유능한 기업인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세계제일의 기업경영인으로는 으레 GE(General Electric)의 잭웰치 회장이 꼽힌다. ‘포춘’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뽑았고 GE를 ‘가장 존경할만한 회사’로 선정해 웰치는 경제계에서 두개의 금메달을 한꺼번에 딴 셈이다.

빌게이츠와 잭웰치는 ‘21세기 기업인’의 상징이다. 그러나 두사람의 스타일은 정반대다. 빌게이츠는 나폴레옹이 용병하는 식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부하들에게 아이디어를 강요하지만 자신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옆사람들과 토의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는다.


잭웰치는 전혀 다르다. 그는 GE의 성패가 사원들이 주인정신을 가지느냐 못가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저력은 사원들이 경영진으로부터 무엇을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고도 잘 해나갈 때 탄탄하게 구축되는 것이며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움직여지는 회사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진이 암초를 향해 배를 저어나갈 것을 지시할 경우에도 사원들은 입을 다물게 돼 결과적으로 배가 난파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잭웰치는 사원들의 직접 참여정신을 가장 중시한다. 사원들이 경영에 참여하려면 회사 분위기가 개방적이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원들이 윗사람에게 말할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목소리에 동기를 부여하라는 것이 잭웰치의 ‘새로운 기업문화 창조’정신이다.

반면 빌게이츠의 경영방식은 좀 다르다. 그는 소프트웨어 세계가 두뇌전쟁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원은 우선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채용원칙의 제1조로 삼고 있다. 복장이나 매너가 약간 이상해도 관계없다. 윗사람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다. 실제 그는 예스맨 참모를 싫어하며 자신과 맞서 논쟁을 벌이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능력있는 사원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빌게이츠식 경영의 단점은 빌게이츠 없으면 아무 일도 안되게 회사가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스피드광인 그가 행여 사고로 죽기라도 하는 날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잭웰치와 빌게이츠의 기업경영 스타일이 반대이면서도 두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경영인으로서의 비전이다. 비전(Vision)은 허황된 계획이 아니라 실현 가능해야 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나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조직의 근성이라고 할까 원리라고 할까- 거기에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생기게 되고 변화를 거부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현재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이 평가받고 있는데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전에는 혁신이 따르기 마련이고 혁신을 하려면 위험감수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전의 가장 큰 적은 실패다. 누구나 비전을 가지려 하다가도 멈칫하는 것은 자신이 비전을 제시했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실패를 염려하다 보면 결국 노를 저어 닿는 곳은 “잘 살아 보자” “돈 벌어 보자”의 평범한 기업인 자세다.

GE의 불문율은 회장을 20년 했으면 아무리 유능해도 물러날줄 아는 자세다. 잭웰치도 20년 회장직에 머물렀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미국 경제계는 웰치의 후계자가 누가 될것인가가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잭웰치는 후계자가 자신과 스타일이 다르더라도 비전을 가진 사람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자신도 회장이 되기 전 GE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중역이었지만 비전을 가진 인물로 꼽혀 레지널존스 회장이 자신의 의자를 미련없이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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