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안과 보신탕 문화
▶ 샤넬 남 <미술가>
“코리안은 개고기를 먹는대-” 외국인들은 말만 들어도 끔찍스럽고 야만스럽다고 “오우 마이 갓!” 반응을 보인다.
미국에 22년째 살면서 보신탕 화제로 외국인들과 거북했던 경험이 수차례 있던 터라, 신문에 개고기 시비에 대한 기사가 나면 관심이 간다. 지난해에도 세번 기사를 본 기억이 있고 지난 6월 한달 새 만도 벌써 세번씩이나 눈에 띄었다.
▶6월22일엔 영국 동물학대 방지협회인 RSCPA가 한국의 문화적 차이는 인정하지만 한국에서 식품을 위한 ‘개고기 도살’을 명백히 반대한다는 것이었고,
▶6월29일 정오엔 LA 총 영사관 앞에서 동물보호 단체인 LCA 회원 20여명이 보신탕을 추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40분간 시위를 벌였으며,
▶같은 날 뉴욕에서도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이 모여있는 건물 앞에서 미 동물보호 단체 회원 40여명이 한국의 보신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내에 공공연한 개고기 판매 업소만 604 군데에 달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2년전 일이다.
학술 세미나 등 모임을 통해 알게된 교수들과 화가 친구들과 함께 신문기자, 음악가, 극작가, 소설가, TV 인사 등 유명인들이 잘가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베토벤이라는 레스토랑엘 갔다.
그곳은 항상 만원이어서 테이블을 기다리는 동안 칵테일 바에 막 앉았는데 옆에 있던 파란 눈의 남자가 국적이 어디냐고 말을 걸어왔다. “코리안”이라고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을 했더니 대뜸 코리안은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개고기 맛이 어떠냐고 빈정대듯 질문을 던졌다. 뜻밖의 질문에 미소는 저-만치 가고, 온 몸의 피가 정지되는 듯한 모욕감과 수치감이 순간 나를 지배해왔다. 옆에 동반한 석학 친구들이 나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비상구도 안 보인다. 꽉 찬 사람들의 머리만 담배연기에 싸여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조명아래 ‘Exit’ 싸인이 보였다. 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생선요리를 먹느냐고 물었다. 생선요리를 즐겨 자주 먹는다고 했다. 그럼 넌 어항 속에 기르는 금붕어도 먹느냐고 되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고 정색하며 물론 “노우!” 하고 대답했다. 난 이때다 하고 숨 쉴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설명을 해 나갔다. 많은 물고기 종류에도 식용과 관상용이 따로 있듯이 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는 치와와, 푸들, 포메라니안, 진도, 라하사압소, 말티스 등등 많은 종류의 애완용 개가 있는가 하면, 보신탕용으로 쓰이는 개는 식용개로 일종의 야생토종(Wild Dog)이라고 했다. 홍조를 띄고 있던 내 입술을 통해선 죽어도 ‘똥개’란 표현을 할 용기는 존재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적어도 내겐 심각한 순간이었다. 내 조국의 명예를 안고 다시 한번 강조를 했다. “Koreans do not eat their pets” 라고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있다는 그 미국인은 그때서야 아, 그러냐고 잘 이해했다고 하면서 개고기가 그렇게 영양분이 많다고 하니 한번 기회가 있으면 꼭 한국산 식용개 요리를 맛보겠다면서 우리 일행과 합석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는 미국내에서나 유럽을 가나 심심찮게 개고기 시비가 생기면 난 당당하게 전과 똑같은 설명으로 상대방들을 이해시키곤 하는 도사가 되었다.
원숭이를 먹는 먼 나라 얘긴 떠나서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자기들이 먹고 있는 돼지고지, 오리고기, 사슴고기들이 어려서부터 만화영화를 통해 친구가 되었던 포키 픽(Porkey Pig)이나 도날드 덕(Donald Duck), 밤비(Bambie)들의 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식품들의 불매운동을 벌일 것인가? 언젠가는 이들도 식용과 애완용, 그리고 만화용은 따로 있노라고 어린이들에게 변명을 해줘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아무리 보타이와 턱시도 차림에 벤츠를 몰고 우아하게 롱 드레스를 걸치고 오페라나 심포니 연주회, 전람회, 고급 정치인들과의 디너파티 등 하이 소사이어티에 얼굴을 내민다 해도, 외국인들 눈에 코리안은 개고기를 먹는 식견종으로 보일 땐 더 이상 문화란 외투자락으로 야만인이란 인식을 덮을 길이 없는 것이다.
LA. 코리아 타운에 그 많은 한국식당이 있어도 보신탕 전문점은 단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아무도 먹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도 없는데 다만 한국내에서 성행하는 보신탕 때문에 이곳에 있는 우리는 식견인(識見人)이 아니 식견종(食見種)이란 까만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이다.
한국에선 어차피 보신탕을 추방시키진 못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보신탕을 건강요리 문화차원에서 다뤄 봄은 어떨가?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이라면 국내인만 몰래 몰래 달밤에 먹을 것이 아니라 수출의 한 몫을 차지하는 고려인삼 처럼 식용개란 제목 하에 ‘고려 보신탕’이나 ‘고려 와일드 독’(미국의 핫도그처럼) 등 멋진 상품으로 포장하여 수출 증대에 기여해 봄은 어떨지. 당장 수출까지 발전은 못한다 해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식용개가 따로 있단 말 한마디라도 아쉬운 대로 쓴다면, 적어도 한국인을 아무 개나 다 도살해서 보신탕을 먹는다는 야만인 대우는 분명히 받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금 우리집 뒷마당엔 보신탕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미국 태생 진도 백구 두 마리가 “우리 주인은 결코 우리를 잡아먹는 그런 야만인이 아니야!” 하고 맘 푹 놓고 오수를 즐기고 있다. 개들이 부럽다. 개들이 팔자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난 보신탕 문제로 또 혈압이 올라 체면유지책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니…. 개고기도 못 먹어본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