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교포’인가 ‘동포’인가

2000-09-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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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동<의사>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온 우리들은 흔히 우리 자신을 ‘교포’ 또는 ‘교민’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곳 LA 지역의 라디오, TV, 신문, 잡지에서도 거침없이 ‘교포사회’‘교민사회’‘범 교포대회’ 또는 ‘교민회’라는 말을 쓰고 있다.

미국에 이민 와서 미국의 시민이 되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진정 교포이고 교민일까? 교포라는 단어에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교포는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뜻은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떠돌며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그네 인생들을 빗대어 쓰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누가 우리를 교포라고 부른다는 것은 비아냥대는 뜻이 되며 우리 자신이 교민이라고 부른다면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하는 꼴이 된다.

교포라는 말은 이미 관용어가 되었는데 무슨 트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한국에 살 때, 중국 음식점을 생업으로 하며 사는 중화민국 사람들을 화교라고 불렀다. 또 1960년 중반에 한일국교가 정상화되어 일본에 사는 많은 한인들이 조국을 방문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을 재일교포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교포나 교민이라고 불리는 것이 싫다. 그렇다면 어떤 단어가 합당할까? 나는 미주한인, 미주동포, 한인사회, 동포사회, 또는 미주 한인동포 등의 말이 더 좋다. 물론 영어로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가 있다. 여하튼 우리가 교포라는 말을 계속 쓴다는 것은 마치 우리 민족이 우리 자신을 ‘엽전’이라고 비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나친 비유일까? 엽전 같은 신세의 사람이라면 엽전처럼 값싸게 처신하게 되고, 은전이면 은같이 귀하게 자신을 처신하며 사는 법이다. 우리 자신을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떠나온 조국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교포로 우리를 부르도록 방치해도 안될 것이다.

심지어, 떠나온 조국의 외무부에서 파견 나온 총영사관에서도 우리 미주 한인들을 지칭할 때 재외동포, 미주동포, 동포사회 등의 동포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교포’‘교민’하며 우리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조국을 떠나 미국에 오게 된 동기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정직과 상식이 통하고 풍요로운 기회의 나라 미대륙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려고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선진 학문과 기술을 익힌 후 조국에 돌아가려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귀국을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은 진취적이고, 어려움에 도전하여 극복하는 근면성을 지닌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다른 이민 1세대보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안정되게 정착한 인종이고, 2세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독특한 미주 한인들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 이민 1세대가 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는 교포나 교민으로 부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고국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같은 교포도 교민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택한 새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값진 인권과 자유를 누리며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미주 한인들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터득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떠나온 조국을 돕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교포’가 아니다. 우리는 당당한 미주 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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