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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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2세들은 왜 한국어를 홀대하는가

2000-09-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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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언

▶ 구은희 <호프인터내셔널대 한국어교육학 교수>

미국 내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민 1세들에게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여력이 없었다. 그 결과 그들의 자녀들은 빠른 속도로 미국에 동화되었으며, 각 분야에서 주류사회에 진출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2세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에 따른 그들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그 심각성을 깨달은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서 민족교육, 뿌리교육을 주창한 주말 한국학교들이 주로 교회사업을 통하여 설립되었다. 우리의 2세들에게 우리의 것,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주말 한국학교는 그 숫자를 더해 갔고, 그에 의해서 우리의 한국어 교육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정작, 한국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그 의미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어를 기피하는 학생들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주의 경우, 90% 이상의 한인 2세들이 토요일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한국학교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서 또, 친구들이 좋아서 한국학교에 다니지만,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들이 왜 한국학교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자신들이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어를 배워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납득할 수 없게 된다. 한국어를 배워야하는 동기도 없는 그들에게 한국에서 20여년 전에 받은 국어교육의 방법을 이용한 한국어 수업은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정규학교에서 배우는 서반아어와 불어보다도 한국어를 하찮게 여겨, 외국사람 앞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한인 2세들의 제1 언어가 영어이며, 제 2언어는 서반아어, 그 다음 제3의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우리는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2세들의 한국방송과의 인터뷰가 영어로 진행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적어도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될 때에는 한국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한인 2세들이 이렇게 한국어를 홀대하는 것은, 한국어는 한국사람만을 위한 언어이며, 자신들은 한국사람이 아니고, 또한,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데에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어에 관한 자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것은 1세들의 무리한 바람일 것이다. 그들이 한국어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우수한 언어’라는 사실을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규과목으로 배우고 있는 다른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고, 외국학생들도 선택할 수 있는 언어임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통하여 샌프란시스코와 어바인의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반이 폐강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두 학교 모두 폐강 위기에 처한 한국어반을 살리기 위하여 한인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에 따른 한인사회의 반응은 정말 서늘했다. 얼마전 한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한 반응과는 달리, 정말 이 두 학교를 향한 한인들의 관심은 저조했으며, 이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한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정규학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하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지 못함에서 온 결과일 것이다.

한국어반 개설 및 유지를 위해서 미국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나 교육국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우리의 한인 2세들이 한국어를 외국어의 하나로 택하여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미국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주말 한국학교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어가 정규 외국어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으면, 외국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고, 따라서 한인 2세들도 한국어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정규 학교에 떳떳이 한국어 과정 개설을 요구하지 못하고, 과외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비정규 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이다. 한인 2세, 3세, 그리고 나아가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기 위해서 미국 정규학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하는 일에 한인학부모님들을 비롯한 한인사회의 큰 관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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