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바로티를 규탄한다

2000-08-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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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의견

▶ 서병선<뉴욕 예술가곡연구회 회장>

얼마전 서울 잠실체육관 공연을 앞둔 파바로티가 김대중 대통령을 접견하는 사진이 크게 실렸다. 최근 파바로티가 어린이 음악회를 판문점에서 열어 남북 어린이들을 함께 관람시키는 일을 김대통령이 직접 검토중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끼칠 영향을 관찰해 본다. 지금 파바로티는 자신의 활동과 자기 5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부인을 버리고 27세된 여비서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인권을 존중하는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규탄을 받아왔다. 이러한 비도덕적인 사람을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 초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상식을 짓밟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파바로티의 소리는 격정으로 가득차 있어 격정, 난폭, 잔인… 등을 노래하는 토스카, 오텔로와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므로 위대한 오페라 가수로 군림해 오고 있으나 지적 인격이 있어야 부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의 성악 예술인 슈베르트나 브람스의 가곡은 잘 부를 수 없는 소리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라면 아름다운 가곡과 동요를 들려주는 문화적인 행사를 생각하는 것이 평범한 상식이 아닐까? 가곡은 인내, 소박, 정직, 지성, 사랑… 등 인류정신에 가장 소중한 영양소를 간직하고 있는 가장 문화적인 노래다. 가곡이 전통적으로 보존, 계승되어 오므로 국민정신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오고 있는 독일, 프랑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국민이 평안을 누리고 사는 아름다운 문화국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소리는 가곡에 알맞는 아름다운 소리다. 이러한 소리들이 체구에도 맞지 않는 오페라를 하느라 소리의 생명인 아름다운 빛깔을 잃고 소리가 깨지고 파손되는… 등 소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어처구니없는 오페라의 열기가 온 한국 땅을 휩쓸고 있다. 학문의 전당인 한국의 모든 음악대학들조차도 오페라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으며 모든 성악예술의 정수인 아름다운 가곡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반학문적인 음악풍토가 만연되어 온지 오래다. 가곡행사도 홍수를 이루고 있으나 잦은 오페라 출연으로 인해 크게 손상된 소리로 오페라 하듯 소리를 질러대니 아름다움을 창조·보급함으로 인간정신을 순화하고 승화시키는 예술사명은 간데 없고 허영만 퍼먹이는 반예술행위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음악 풍토다.


대개 오페라의 음악이 현란하게 아름다우나 아무 진실이 없고 어떠한 진실을 노래할지라도 성악예술에서 반문화적 존재가 되는 가장 화려한 소리와 가장 화려한 반주로 연주되므로 모든 진실이 묵살되고 자극적 쾌락을 주는 자극적인 음악이 되는 것이다.

나 자신도 한때 오페라를 최고의 예술로 숭상하고 나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오페라에 바쳤고 그러던중 오페라의 해독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사랑이 나날이 메말라 가는 현상, 인명경시 풍조,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잔악한 살인행위들이 다 오페라의 큰 영향에 있다. 종합예술의 위대한 허울을 쓴 오페라는 실제로 인간의 정서, 영혼, 사랑을 고갈시키는 가장 잔인하고 가장 사악한 음악이다. 엄밀히 말해 오페라는 클래식 음악이 아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페라의 병적 열기가 온 한국 땅을 휩쓸어 파바로티를 지속적으로 초청하고 티없이 맑은 마음을 지닌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 초청을 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8.15 해방 기념 음악회와 같은 민족적인 행사에서도 우리의 노래인 한국가곡은 한곡도 부르지 않고 오페라 아리아만을 부르는 일이 아무 거리낌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가치판단이 마비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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