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응급당직

2000-08-29 (화)
크게 작게

▶ 닥터일기

▶ 정수헌<내과의>

응급이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부딪치는 불쾌한 일들이다.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던가 수도관이 터졌거나 전기가 누전 되는 일들부터 시작해 홍수나 지진이 나는 등의 천재지변까지 응급은 생활의 필연적인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응급상황 중의 응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 갑자기 아플 경우이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보다 더한 급한 상황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들은 의과대학 시절부터 당직이 생활의 일부처럼 따라다닌다. 급한 병이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므로 의사들의 당직이란 하루 24시간 연 365일 일수밖에 없고 일이나 개인적인 스케줄이 항상 본의 아니게 침해(?) 당한다. 많은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까지 피해를 보는 때가 허다하다. 가족과 콘서트를 간다든지 친구들과 골프를 할 때 급하게 울려오는 비퍼소리는 본인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당황하게 만든다.

당직은 응급을 위한 제도이지만 대부분 메시지는 진료 약속을 하자거나 처방을 원하거나 하는 응급이 아닌 경우가 많다. 뉴욕서 휴가 중인데 감기 처방전이 필요하다든지 새벽 3시에 잠이 오지 않아 잠 오는 약을 달라든지 하는(실제 지난주 당직 때 일어났던 일이다) 전화는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 환자들이 다른 외국 환자들 보다 훨씬 점잖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예의범절이 여실히 나타난다. 밤이나 주말에 전화 오는 적은 거의 드물고 응급전화가 왔다 해도 거의 사망(?) 직전인 경우가 많으니 어떤 때는 너무 늦어 환자나 가족들에게 의사들이 화를 내기도 한다.


아무튼 응급당직이란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만 사람의 생명을 보살피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부터 지는 멍에이자 의무이고 환자들과의 무언의 약속이다.

대부분 의사들은 무엇보다 고귀한 인간의 건강을 보살피는데 자신들이 필요하고 쓰임을 받는다는 뿌듯한 충만감과 사명감에 어려움을 견뎌 나간다.
얼마전 심장외과 전문인 미국의사 친구 장례식에 참석을 했었다. 수련의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아이로니칼하게 심장학회 참석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장례미사에 갔을 때 구름 같이 모인 환자들 때문에 많은 조객들이 서서 미사를 드린 것도 놀라웠지만 그 친구가 아침 새벽마다 성당에 들러 그날 수술할 환자를 위해 매일 기도를 드렸다는데 또 한번 감명을 받았고, 그날 그 감동이 오랫동안 마음을 감돌았다.
그런 그 뿌듯한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의사들을 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쓰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중 또 비퍼가 울린다. 글을 다 쓰고 받을까…. 좀 기다려도 괜찮겠지. 아니다. 입원환자 상태가 악화가 되었을까 아니면 어느 분에게 심장마비라도 온 건 아닐까. 빨리 전화를 해봐야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