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한미군의 의미 바뀌어야

2000-08-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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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 of America

북한은 지난 수주일 사이 종래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철회하고 미군주둔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 통일후 한국에 대규모 미지상군을 항구적으로 주둔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3만7,000명의 미군 철수를 계속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달 들어 태도를 180도 바꿔 한반도에 미군배치를 환영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김정일은 지난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한차례 장난을 친 바 있다. 김정일은 푸틴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나라가 위성을 대신 발사해 주면 탄도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평화중재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원하는 푸틴은 즉각 이같은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김정일은 얼마전 남한의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심각히 생각하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발뺌을 했다.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한 오랜 반대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주한 미육군과 공군의 존재는 과거 남침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시키겠다는 북한의 전략에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은 남한에 대한 무력침공을 꿈조차 꿀 수 없는 형편이다. 군사력은 노후했고 러시아나 중국의 지원도 얻을 수 없다. 북한은 지금 남한과의 급속한 통일을 피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게되면 경제적이나 인구적인 면에서 월등한 남한에 흡수되고 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평양이 원하는 것은 정권이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소한 양보를 해주고 남한과 그 우방들로부터 원조를 얻어내자는 데탕트다. 김정일은 결국 자신이 북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일의 데탕트 정책에 있어서 미국은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미국은 남한의 북한에 대한 원조를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원조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국등 다른 나라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위협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중국은 오랜 세월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만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중국이 구소련이나 베트남을 침공했던 역사를 북한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남한과 그 우방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북한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러시아도 약하긴 하지만 불안정하고 예측이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를 한때 식민지배했던 일본도 한국인들의 눈으로는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중국, 러시아, 일본의 경쟁의식에 따라 한반도는 이들 주변 강대국들의 야심에 희생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한은 동북 아시아에서 가장 약한 나라라는 점에서 지역내 열강들간의 충돌에 의해 가장 상처받기 쉬운 입장이다.

이들 열강들과 비교하면 미국은 가장 한반도에 우호적인 강대국이다. 영토상의 어떤 욕심도 없으며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내 모든 경쟁세력의 영향력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고 있으며 남북한 화해에 반대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군의 주둔이 계속돼야만 북한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다.

미국은 북한의 변화를 이용해야 한다. 남한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전면 철수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과 지역 국가들에게 재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군은 이 지역 안정과 번영에 있어서 안전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변화는 남한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종전 북한의 남침저지에서 지역안정보장으로 주한미군의 의미 변경을 합리화 시켜줄 수 있다. 그같은 의미 변경이 이뤄지면 북한이 붕괴된다고 해도 통일 한국에서의 미군주둔은 용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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