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때로는 눈감아주는 아량 필요

2000-08-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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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이제는 어른이 된 세아이들이 크는 과정에서, 남편은 보성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스승얘기를 많이 했다. 자신이 일생동안 “아버지와 직접 나눈 이야기는 200마디가 안될 만큼 전통적 한국식 자녀교육”을 받은 그로서는 청소년기에 영향을 끼친 스승들이 ‘어른의 상’이었다.

‘호드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한문을 가르치신 강직한 노인이셨는데, 숙제를 안해오거나 떠들어대면, 학생들 앞에서 본인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호된’ 채찍질을 가하셨다고 한다. 비록 어린 중학생들이라도 선생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좋은 본을 보이지 못했으니 대신 벌을 받으마!”하시는데, 큰 감화를 받고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 세대에게 뭉클하도록 사랑이 느껴지는 그 호드기 선생님의 ‘훈육방법’은 아마 전쟁후의 고난과 일본식 자기억제, 민족의 한들이 엉클어져서 ‘훌륭한’상이 되었겠지만, 고통에 길들지 않은 세 꼬마들에게는‘이상한 행동’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상담중에 만난 17세 한인 소년의 아버지는 미국병원에서 일하는 마약상담 치료자를 비난하였다. 분명히 아들이 학교에서 마약을 쓰다가 걸려서 상담하러 데리고 갔는데 소변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허락을 하면 부모에게 알려줄 수 있는데, 아직은 아들이 승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17세의 ‘미성년’자녀에 대한 궁극적인 도덕적, 권리와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소변 검사’의 의뢰와, 검사비 부담도 부모의 몫이다. 문제는 ‘마약에 손을 대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주인공은 다른 ‘인격체’, 즉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려는 청소년이라는데 있다. 마치 꼬리가 아직 달려있는 올챙이가, 어느날 네발이 비죽하게 보이니까 개구리가 다된 줄알고 뭍으로 뛰어나가려는 무모함과 비슷하겠다.

처음 소변검사를 통해서 소년을 정신차리게 하고 철저히 감독함으로써 올챙이를 다시 물속에 보내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러나 자신의 ‘억제 능력’을 잃어버리고, 반복해서 뛰쳐나가는 이 소년과 같은 경우에 ‘혼내는’것만이 최선일까. 이 아버지는 불안해 하지만 소년의 상담가가 쓰려는 방법은 ‘개구리인양 존중히 주는 길’인듯 했다. 끝없이 발달되는 문명의 소요속에서, 청소년들은 갈팡질팡한다.

부모가 보여주는 ‘옳은 길’이 어떤 때에는 너무 어려워서, 삐딱한 선택을 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소년처럼 ‘자신의 길’을, 비록 그 길이 틀린 것 인줄 알면서도, 부모에 대항하는 ‘도전장’으로 삼아버릴 때도 있다. 자신의 ‘존재 이유’, 나아가서는 인격의 존엄성에까지 관련을 시킬 수 있다. 즉 부모가 나를 ‘믿어주고, 인간 대접을 하나?’, 아니면 옛날처럼 덮어놓고 ‘아이로 취급하나?’를 끝없이 시험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나, 자존심을 돌보기에는, 전쟁이 너무 길어지고 상처가 깊어진 경우도 있다.

우리 이민 1세가, 개구리로 뛰어나오기 위해서는 ‘호드기 선생님’이 보여준 자기 희생, 아픔을 참아내는 인내, 자신보다는 주위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양보등이 중요 무기였다.

우리가 선택해서 온 이 ‘개척지’땅 연못에서 자란 올챙이들이 뭍으로 튀어나가는데 필요한 ‘무기’는 어떤 것일까. 여전히 인내와 양보와 자기 희생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 속옷 위에다가 걸칠 수 있는 유머 감각, 정의감, 독립심의 ‘겉옷’을 입을 줄 알아야 한다. 속옷을 ‘Foundation’(기본)이라 부른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속옷’위에 우리 2세들이
이 땅에서 배우고, 익혀야할 ‘겉옷 입기’ 연습장에는 때로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부모의 모습에서 우리 자녀들은 사랑하고 ‘믿으려고’노력하는 부모를 보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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