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픈 뒤 훌쩍 큰 찬호

2000-08-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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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홈런이다. 방망이를 떠난 하얀 공이 둥근 아치를 그리며 펜스를 넘어갈 때 지켜보는 관중들의 가슴은 확 트인다. 그래서 야구경기는 ‘백구의 향연’이라고 불려진다. 홈런이 없다면 야구 구경을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야구에서 홈런의 비중이 이같이 큰 만큼 홈런타자들은 인기를 끌고 높은 연봉을 받게 된다. 아무리 타율이 높고 안타를 많이 쳐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팬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것은 홈런 왕이다. 만루홈런이면 더 좋다. 게다가 9회말 역전 홈런이라면 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난 88년 월드시리즈 1차전, 다저스의 커크 깁슨이 친 9회말 역전 홈런은 LA 스포츠 100년사에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으로 꼽힌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홈런왕은 행크 아론이다. 그는 1935년 베이브 루스가 수립한 714호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30년만인 1965년 경신했으며 54년부터 76년까지 23년을 뛰는 동안 755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은 지난 9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빅맥’ 마크 맥과이어가 수립한 70개다. 맥과이어는 로저 마리스가 1961년 세운 시즌 최다홈런 기록 61개를 37년만에 깼다.


우리의 박찬호도 24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홈런이자 통산 첫 홈런을 터뜨리고 당당히 홈런타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로써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첫 한인 선수’ ‘메이저리그에서 첫승을 올린 한인’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첫 홈런을 때린 한인’의 기록을 추가하게 됐다.

박찬호의 홈런기록은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본업이 투수인 만큼 그보다는 시즌 13승 기록이 더 의미가 있는 일이다. 어릴 적 호되게 아프고 나면 키가 컸다는 말을 듣는다. 박찬호도 지난번 독감을 앓고 난후 피칭감각이 좋아졌다. 이날 경기에서 5회 1사 만루의 위기를 침착하게 넘기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홈런이 투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심했다"는 소감에서 정신적으로도 한결 성숙한 모습이 느껴졌다.

박찬호의 금년 기록을 지난 시즌과 비교해 보자. 지난해는 시즌 전체를 통틀어 33게임에 출장, 13승11패를 거뒀는데 올 시즌에는 24일 경기까지 27게임에서 13승8패를 거두고 있다. 앞으로 남은 7~8회의 등판에서 반타작을 거둔다면 16~17승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며 이대로 나간다면 20승 가까이도 바라볼 수 있지 않느냐는 욕심이 생긴다.

방어율도 지난 시즌 5.23에서 올 시즌은 현재까지 3.66으로 무려 1.57포인트를 낮췄다. 특히 최근 6차례 등판에서는 게임당 평균 7이닝 이상 투구하며 2.32의 방어율에 3승1패를 기록했다. 삼진 36개에 포볼 15개로 컨트롤도 좋았다. 한마디로 특급투수의 수준이다. 지난 시즌 한 이닝 같은 타자에 2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하는 메이저리그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수립했던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역시 아팠던 만큼 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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