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장미꽃 두 송이

2000-08-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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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이 본 한국

▶ 크리스 포오먼(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이웃집에 사는 잭은 장미꽃 키우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그의 뒤뜰에는 여러 종류의 장미꽃으로 가득 차있는데, 그 중에서 유난히도 꽃잎이 크고 아름다운 빨강 장미를 자랑하곤 한다. 정원 가장자리에 있는 노란색 장미꽃을 제외하고는 사철 내내 피는 크고 우아한 장미꽃들이 대개 접종한 혼성 장미꽃이라 한다. 여러 종류의 장미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랜드플로라(grandifloras)라는 장미꽃인데, 꽃잎이 아기 손바닥만큼 커서 꽃송이가 탐스럽고 아름다우며 오랫동안 피어 있는 장미꽃이라 한다.

장미꽃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는 왜 접종한 장미를 키우느냐고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접종하여 키운 장미꽃들이 순종 장미보다 우수하고 강하다 하였다. 접종하는 이유는 양쪽의 우세성을 혼성된 종류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이 좋은 종류를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서 얻는 방법이라 하였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하이브리드 티’(hybrid teas)는 사철에 피는 장미꽃에 tea라는 장미꽃을 접종시킨 꽃으로 tea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사철 내내 즐길 수 있다 하였다.

잭이 신이 나서 장미꽃을 자랑하였을 때, 나는 우리 집의 두 그루의 장미 나무를 생각하며, 그가 가지고 있지 않는 두 종류의 접종된 장미가 우리 집에 있다고 자랑하였다. 의아해하는 잭에게 내 아이들, 진하와 평화가 혼종(hybrid)이 아니냐고 말했다.


나의 두 젊은 청년들은 유럽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니 혼종이다. 접종 장미꽃처럼, 인간도 다른 인종과 피가 섞일 때 양쪽의 우성 인자를 타고나기 때문에 우량종이어서 핸섬하고 스마트하다고 한다. 아버지이기에 편견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연적인 현상인 것을 어찌 부인하랴.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혼종(mixed race)에 대해서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고 미국사람으로 취급하였다. 마찬가지로 미국 중부에 살았을 때, 그 곳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을 동양인으로 취급하였다.

진하와 평화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자이크처럼 장식하고 사는 캘리포니아가 자기 고향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섞인 피를 가진 사람들을 부정적인 눈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혈아들의 이국적인 모습을 멋있고 쿨(cool) 하다고 한다.

진하와 평화는 자신이 유럽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가졌다는데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자신들이 ‘cool’ 하다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많은 혼혈아들이 어두운 곳에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우울해진다. 한국에서 혼혈아로 태어났다는 죄명으로, 뒷골목에서 구걸하면서 온갖 수모를 받으면서 살아야하였던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힌다.

나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신의 섞인 백그라운드가 ‘특별한 축복’이 아니라 ‘수치’라고 생각하면서, ‘혼혈아’ ‘튀기’ ‘잡종’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 살아야 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우리는 지금 새 천년, 신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지난 세대들보다는 한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들에게 너그럽기를 기도한다. 자연의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가 섞여서 강하여지는 것처럼 사람도 섞이고 아이디어도 섞이어야 강하여지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생명은 누구의 것이나 귀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순 한국사람이나 순 유럽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부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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