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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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눈물, 대통령의 눈물

2000-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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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의원)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왕 아하수에로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왕이다. 기원전 480년 봄, 크세르크세스는 10여만 대군에 수백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다다넬즈 해협을 건너 그리스 침공에 나섰다. 화려한 색깔의 깃발을 나부끼며 행진하는 대군의 위용을 바라보면서 크세르크세스는 창연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모든 영광은 순간에 불과할 따름이다.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지고 이 용사들도, 나도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송태조 조광윤은 당나라 말기 이후 5대 시대로 불리는 중국의 오랜 전란기를 마감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영걸이다. 태조 7년 강남국 정벌에 나선 송나라 군대는 강남국 수도 금릉성을 함락시켰다. 이 승전보가 전해진 순간 태조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이번에도 성을 함락시킬 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지난 91년 6월의 일로, 부시는 한 공개모임에서 걸프전 수행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국의 젊은이들을 죽을 수도 있는 곳에 보내야하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바바라와 함께 눈물의 기도를 드려왔다. 수백만의 생명이 걸린 전쟁 수행을 결정하던 날은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날이었다." 부시는 이같이 회상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또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장년의 남성, 특히 정치 지도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된다는 게 미국적 상식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렸으니 바로 뉴스의 표적이 됐다. 정치 지도자가 눈물을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하는 게 미국의 언론이지만 부시의 눈물에 대해서는 비아냥거림을 삼갔다. 일부 언론은 오히려 ‘부시의 눈물은 군통수권자로서 걸프전 참전자에게 보내는 최대의 경의 표시’라고 논평했다.

"서울이 울었다, 평양이 울었다, 7,000만이 울었다" 50년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날 한국의 도하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제목을 달았다. 700여만 이산가족중 남북한 당국의 주선으로 그리던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은 남과 북 각각 100명씩 불과 200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사연은 너무나도 처절했다. 또 떨어져 살아온 그 참담한 삶의 현장이 너무나 서글프고 억울해 온통 울음의 도가니를 이룬 것이다.

’50년만에 3박4일’의 이 짧은 만남에는 세계도 울었다. 50년 전에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못보고 다시 떠나기 직전에야 병상에서 잠깐 만나고 울며 돌아서는 북에서 온 아들에게 ‘가지 말고 함께 살자’는 9순 노모의 절규를 미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은 일단 끝났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들은 저마다 애절한 사연을 남겼다. 그리고 그 사연들은 아직도 핏줄의 생사조차 모르는 수백만 이산가족의 아픈 상처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산가족의 눈물은 체념에서 분노의 눈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의 이 눈물의 상봉과 관련해 정작 관심이 가는 대목은 북한의 김정일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김정일은 가슴으로 울었을까. 아무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의 주연출자는 김정일이다. 7,000만을 울음바다로 빠져들게 한 ‘위대한’ 연출 효과에 그는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 50년만에 혈육을 만나는 벅찬 순간에도 ‘장군님의 배려’에 대한 감사를 결코 빠뜨리지 않는 북측 이산가족의 모습에 그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띠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조차 드는 것이다.

이같은 추측은 다름에서가 아니다. 그처럼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혹한 체제가 북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을 낳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통일은 내 맘먹기에 달렸다"는 발언이다. 김정일의 이같은 발언은 남북문제의 앞으로의 행로는 전적으로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비치고 있다. 이같이 자신감으로 가득찬 마음에서는 ‘연민의 눈물’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다.
제아무리 막중한 권력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알고 또 자신이 내린 결정이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두려워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지도자는 결코 약한 지도자가 아니다. 진짜 가슴으로 울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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