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목사

2000-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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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세이

▶ 정숙희 (특집 부장)

수년전 나성영락교회에서 20년간 사역했던 송천화목사가 은퇴했을때 성도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지난 3월 오렌지한인교회에서 이종은목사가 은퇴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두사람 모두 부목사로 목회하다가 은퇴했기 때문이다. 담임목회를 하지 않고 부목사로만 사역하는 것은 한국교계에서 뉴스거리가 될만큼 희귀한 일이다.

미국교회에서는 평생 음악목사나 교육목사의 위치에서 사역하다가 은퇴하는 목회자들이 적지않은 반면 한인들은 부목사로 오래 사역하는 것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모든 것이 담임목사 중심이다. 교인들의 초점도 담임에게만 쏠려있다. 같은 목사라도 ‘주의 종’이라며 극진하게 대접하는 대상은 담임 뿐이고 부목사가 열번 심방을 해도 담임목사가 한번 심방하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기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신학교에는 ‘당회장과’ 밖에 없다는 조크가 있다. 신학생들이 일단 학교를 나와 목회를 시작하면 궁극적 목적은 담임목사, 즉 당회장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꼬집는 말이다. 실제로 ‘소의 꼬리보다 닭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목회에도 적용되어 큰 교회 부목사보다 작은 교회 담임목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풍토는 한국인의 가부장적 의식구조와 계급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성도들이란 사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반드시 서열을 따져야 직성이 풀리는 한인들은 교회안에서도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민감하고 그에 따라 사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계급타파를 주장했는데 어찌된게 한국교회는 철저한 계급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평신도들은 서리집사 안수집사 장로(혹은 권사)로 ‘올라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고, 교역자들은 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가 되는 것을 승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때문에 담임목사는 부목사를 동역자라기보다 ‘아래사람’ 혹은 ‘직속부하’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고 때로는 자신의 수족 부리듯 대한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어느 교단은 총회법에서 부목사를 ‘담임목사를 보조하는 임시목사’로 규정하고 있는 정도니 부목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부목사는 설교를 잘해도 안되고, 못해도 안되며, 담임목사의 눈에 나거나 선을 넘지 않도록 부단히 조심해야 한다. 담임보다 튀거나 인기 있으면 이런 저런 이유로 쫒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모들 사이에도 계급의식에 따른 알력이 있다고 한다.

또 한가지는 담임들이 부목사를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큰 교회에서는 부목을 잘 하고 있어도 절대 담임의 후임으로 청빙하지 않는 관례가 있어서 부목들은 아예 희망을 갖지 않고 ‘목회의 노하우’나 잘 배워 나가서 개척하는 것이다.

부교역자는 목회 월급에서도 담임목사와 큰 차이가 있다. 보통 큰 교회 담임목사의 경우 주택보조비와 자동차 유지비, 도서비, 활동비, 의료보험, 그리고 때론 자녀교육보조비까지 묶은 수천달러의 ‘패키지’가 제공되고도 4-5천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부목사들은 패키지 없이 풀타임의 경우에만 의료보험이 제공되며 2-3천달러가 고작이다. 작은 교회의 부목들은 아무 것도 없이 1,500달러의 박봉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50-60대 연령층인 담임들은 자녀가 다 장성했으므로 돈 쓸 일이 많지 않다. 또 어딜 가도 성도들이 대접하거나 교회재정에서 처리하는데다 타교회 집회라도 인도하고 나면 강사료도 받을 수 있다. 반면 부목들은 나이가 보통 30-40대로 자녀가 한창 성장기라 돈 쓸 일이 태반인데 월급은 적고 강의초청도 없으므로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일반사회에서는 경력이나 능력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회가 같은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왠지 ‘은혜스럽지’ 못하다. 교회의 원형인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모든 재산을 통용하며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목사 사역문제는 목회영역이 불분명한 것과 전문성 결여에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의 영역이 세분화되어 사역자들이 자기 고유의 영역을 찾고 교회가 이를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인식전환이다. 성경에 따르면 교회란 예수님의 ‘몸’으로서 모든 지체가 모여 조화를 이룬 곳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모두 머리만 있는 기형적 모습이다. ‘달란트’를 자주 이야기하는 목회자들은 자신의 달란트가 담임인지, 부목인지, 행정인지, 교육인지 잘 분별해 맡은 바 소명에 충실하고, 성도들은 담임이나 부목이나 모든 목사가 똑같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인정하고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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