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망을 이기는 힘

2000-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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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전서영<뉴저지 중독증 치료센터 소셜워커>

살다보면 가끔씩 소설보다 더 기구한 사연들을 접하게된다. 지난 봄 내가 일하는 중독증 치료 병동에서 만났던 윌리암의 경우가 그런 케이스였다.
윌리암은 비쩍 말랐지만 큰 키에 갈색피부와 준수한 용모를 지닌 38살의 흑인이었다. “뉴욕에서 온, 집이 없고 무직자인 MICA환자(Mentally Ill, Chemically Addicted)”라는 간호원의 소개를 들으며 나는 그가 “도시로부터 흘러들어온 또 한명의 빈털터리 마약중독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를 인터뷰하면서 나의 그런 속단이 얼마쯤은 빗나간 추측이었음을 느꼈다.

3년전까지만 하여도 그는 앞길이 창창한 해병대의 젊은 장교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대학과정을 마쳐 엔지니어링 전공의 학사학위까지 받았으며 근년 미국의 모든 전쟁에 참가했던, 어디로보나 뛰어난 경력의 직업군인이었고 술도 담배도 모르고, 아내와 두 딸을 가진 가장이었다.

1997년 여름, 중서부의 한 대학에 ROTC교관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부대내 한 여군이 윌리암이 자기에게 성추행을 하였노라고 고발해 군 재판정에 서게되었다. 윌리암에게 재판이 계속된 일년여동안은 억울함과 분노와 치욕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다행히 재판은 그의 무죄로 끝나긴 했지만 그동안 그와 그의 가족이 당한 정신적 고통은 끔찍한 것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무죄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의 아내의 증언이었다. 성추행 행위가 있었다는 시간과 상황에 반증하여 완벽한 증거와 대답을 준비함으로써 윌리암의 무죄를 증명했던 것이었다.


재판은 끝났지만 작은 부대내에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그를 향한 의아함과 불신의 시선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전근을 신청했으며 그의 전근 신청이 수락되어 새로 근무할 곳에 가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족을 데리러 집에 돌아왔을때 그는 아내가 딸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것을 발견했다. 직업군인으로서의 자랑스럽게 쌓아올렸던 경력이 흔들리는 사건에 이어 자신의 삶의 기동이었던 가정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서 그는 자신이 완전히 중심을 잃는, “망가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현실이라는 진공지대에 갇혀진 작은 동물처럼 느껴졌었노라고 기억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때 그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한편으로는 이세상에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란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찾아간 곳이 윤락가의 창녀촌이었고 그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크랙 코케인을 배웠다. 마약의 힘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은 악몽같은 현실을 떠날 수 있더란 것이 그의 얘기였다. 마약에 말려든지 몇달 후, 그는 불명예 제대를 강요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18년의 군대경력은 공중분해가 되고 말았다.

두어번의 자살미수를 지나며 그의 우울증은 깊어갔었다. 윌리암의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병동에 입원한지 열흘이나 되었을까? 병동의 의사가 그가 HIV보균자임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왔다. 나는 담당의사와 함께 그소식을 전해주고 카운슬링을 하는, 하기 싫은 역할을 해야 했었다. 희한하게도 HIV 카운슬링을 받고 난 뒤 그는 무언가 훨씬 침착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멀어지려던 생명을 향해 다시 다가서고 있는 것같은 당당함이 그에게 보였다.

위기에 처한 삶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그들의 성장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주로 긍정적인 경험을 하며 자란 이들은 조금 실망스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것을 본다. 이와 반대로 성장과정에서 혼돈과 좌절을 지나온 이들은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안정된 가정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비록 궁지에 몰렸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방법을 찾아나설 수 있는 자녀들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부모들의 가장 긍국적인 성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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