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통신의 테리 앤더슨 기자가 회교 테러단에 납치되었다가 9년만에 풀려 나온 뉴스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앤더슨 기자는 7년 동안 인질로 지하실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를 회고록 ‘사자의 소굴’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인간의 만남이 가져오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실감 있게 설명한다.
앤더슨이 인질로 납치된 후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은 혼자 있을 때였다. 컴컴한 지하실에서 24시간을 지내는 일은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사정하여 마침내 다른 미국인 인질과 함께 있는데 성공한다. 사람이 그리웠던 앤더슨 기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데이빗이라는 인질을 반갑게 맞는다.
며칠 동안은 두 사람이 쉴새없이 이야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자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둘이 한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나머지 한 사람도 따라 일어서야 했다. 두 사람 사이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드디어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만남이 상대방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앤더슨 기자는 자신이 다른 인질 만난 것을 후회가게 된다.
인질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꿈꾸는 시간이다. 그 중에서도 가족과 만나는 꿈이다. 이 때는 꿈속에서 헛소리해도 옆에 있는 동료들이 절대 깨우지 않는다고 한다. 테러단의 감시병이 달려와 시끄럽다며 인질의 꿈을 깨우면 그 때가 제일 억울하고 아쉬웠다고 한다.
인간의 만남은 서로 부담이 없어야 유지될 수 있다. 친구는 물론이고 형제간에도 한쪽이 한쪽에 너무 기대면 의가 상한다. 심지어 부모라 해도 늙은 다음에 “네가 내 인생 책임져라”하는 식으로 나오면 자식들이 싫어한다.
인간관계에서 우정이 지속되려면 평등해야 하고 이는 국가간의 외교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갖는다.
서독인과 동독인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를 독일을 여행해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서독인들은 동독인 끌어안은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동독인들은 어디를 가나 서독인 밑에서 빈민취급 받으며 일하는 환경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후 감격에 넘쳐 포옹하던 순간은 하나의 역사기록일 뿐이다. 이들의 감격은 생활 속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의 재상봉 감격이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지만 가족상봉 관계가 발전되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추상화를 그리려면 연변 조선족 동포들과 북한 친척들 사이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볼 일이다.
요즘 미국 한인사회에도 중국 동포들이 꽤 많이 진출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한 동포와의 재상봉이 어떠했었느냐고 물어보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북한 친척을 한번 중국에 초청한 조선족 동포들은 거듭되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시 초청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묻는다.
아무리 도와줘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끊임없이 뭘 보내달라는 요청만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3일의 약속’을 써 이산가족의 아픔을 세계에 전한 정동규 박사가 얼마전 본보 기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내용 중에 흥미로운 것은 정박사가 요즘은 북한의 친척들과 편지 왕래도 하지 않고 생활비 보내주는 것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랬을까.
이산가족의 재상봉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와 나중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상호방문도 하고 송금과 편지 왕래도 할 모양인데 ‘만남’으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느냐도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