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주권자의 설움

2000-08-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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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에 유효기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요”

만기일이 지난 영주권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던 K씨가 곤혹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민국이 영주권에 10년의 기한을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그린카드 위조 및 사기가 극성하자 이에 대한 걸름장치로 채택한 것이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난해부터 이민국은 만기 영주권에 대한 갱신업무를 시작하고 홍보도 활발히 했지만 여전히 이를 인식못해 불편을 겪는 한인들이 간혹 있다.


“영주권은 영구적으로 유효한 것인데 만기라니…”하는 선입관이 원인. 체류자격이야 평생 유효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카드는 10년 단위로 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기간 지난 영주권을 가지고 외국여행 했다가는 귀국시 당하는 고초가 만만치 않다. K씨의 경험.

“김포공항에서 탑승수속을 하는 데 항공사 직원이 내 영주권의 기한이 지났다는 겁니다. 그때야 자세히 보니 만기일이 정말 불과 며칠사이로 지났더군요”

항공사 직원에게 “비행기만 타게 해달라. 그다음은 알아서 하겠다”고 사정했지만 허사. 서류미비 승객을 가려내지 못하고 탑승시키는 일이 빈발하면 항공사가 이민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 때문이다.

결국 탑승을 포기하고 다음날 그가 찾은 곳은 서울 광화문의 미국대사관. 최근의 반미감정 탓인지 전경버스가 줄줄이 서있고 건물출입시 몸검색이 엄격해 분위기가 삼엄했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수위실에서 먼저 용건을 말해야하는 데 수위의 고압적 자세는 대사관이 아니라 총독부라는 착각이 들 정도. 영사과 직원도 딱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사정을 말하고 영주권과 여권을 제출하자‘기다리라’한마디뿐, 설명이 없다.

중간에 점심시간이 끼여 3시간쯤 기다리고나서 받은 것은 밀봉된 봉투 하나. 일종이 여행 허가증인데 비행기탑승 허락일 뿐 미국 입국까지 허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LA공항에 와서야 알았다.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적발돼 다시 재심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연락도 할 수 없어 속은 타는데 이민국 직원들은 잡담할 것 다 하면서 마냥 느긋했다. 마침내 직원이 이름을 불러 창구에 가니 하는 말이 “이번에는 그냥 보내줄테니 이민국에 가서 영주권을 갱신하라”는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기위해 3시간을 공항에 묶여 있었다.

“그냥 살 때는 몰랐는데 입국·체류자격에 문제가 생기자 정말 불쾌한 나라가 미국이더라”는 것이 K씨의 이번 경험. “미국에 오래 살면서 왜 시민권을 안따느냐”는 공항이민국 직원의 충고를 그는 현재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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