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당 전당대회 시위의 앞뒷면

2000-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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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서강대 교수, 현 UCLA 교환교수, 정치학)

말 많던 LA 전당대회가 끝났다. 미국의 2000년대 첫 대통령을 뽑는 선거답게 1만 5천명의 언론인들이 몰려오는 등 난리를 쳤고 한인 커뮤니티도 전국 한인민주당위원회가 결성되어 독자적인 행사를 갖는 등 한 단계 발전된 정치참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원래 미국정치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한인 커뮤니티는 소수의 활동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번 전당대회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지나쳐 버린 것이 사실이다.

아니 무관심을 넘어, 전당대회에 따른 도로봉쇄, 교통불편, 최루탄 사태 등으로 짜증을 냈을 교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다운타운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교포들의 경우 전당대회 기간에 시위를 우려해 가게문을 닫아야 했는가 하면, 문을 열었더라도 시위 때문에 손님들이 다운타운을 기피함으로써 파리를 날려야 했다. 사실 이번 전당대회가 LA에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시당국의 선전과 달리 오히려 적자를 보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모두가 여러 사회단체들의 시위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에 대해 이들을 비난하는 교포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시위 때문에 이번 전당대회는 전당대회장을 철조망으로 완전히 포위하고 요새화한 뒤에야 치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류탄이 터지고 곤봉과 시위진압용 특수탄이 난무해 미국이 제3세계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주목할 것은 이번 시위의 과정이다. LA 경찰은 당초 시애틀과 워싱턴에서의 시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위를 전당대회장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서만 열도록 제한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사회단체들은 이에 대해 연방법원에 제소를 했고 법원은 "전당대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분명히 정부의 의무이지만 단지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에 기초해 수정헌법 1조의 권리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그 판결 덕으로 시위대는 전당대회장 코앞에서 시위를 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이번 전당대회는 ‘요새화된 전당대회’ ‘최루탄이 난무한 전당대회’라는 오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버텨주는 진정한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전당대회였다. 그리고 그 힘은 세계 제1의 경제가 아니라 수정헌법 1조, 즉 사상, 결사, 집회,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권리이다.

물론 이번 시위로 겪은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은 직접적인 반면 수정헌법이 규정한 사상, 결사, 집회, 표현의 자유는 우리와 거리가 먼 추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수민족으로서 한인 커뮤니티가 그나마 현재 누리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지위는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이같은 민주적 권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소수민족의 정치적,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만들어준 60년대의 민권운동은 바로 수정헌법 1조의 민주적 권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번 전당대회에서 적지 않은 교들에게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을 안겨준 민주적 권리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 교포들이 단지 피부색이 희지 않다는 이유로 백인들의 화장실 옆에 설치된 유색인종 전용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스갯소리에 버스가 강물에 빠지면 제일 먼저 구해 내는 사람이 누구냐는 이야기가 있다. 정답은 정치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강이 오염될까봐"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에서나 부패의 상징이고 정치적 허무주의는 현대사회의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타국에 사는 이민사회의 경우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공기가 오염되었다고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살 수 없듯이 누구도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시위의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을 불평하기보다는 정치적 참여를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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