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줄 서서 기다리는 문화 익혀야

2000-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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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실 (주부)

얼마전 딸아이의 생일을 핑계로 물놀이 공원 허리케인 하버에 놀러갔다. 두 조카와 아들, 딸, 남편과 함께 신나게 출발은 했는데, 그 날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또 너무 더웠다. 티켓을 사기 위해 땡볕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야 했다. 애들 아빠는 줄을 섰고, 나는 나무 그늘이 있는 풀밭에서 아이들에게 선탠 로션을 발라주고, 시원한 물병을 애아빠에게 갖다주고, 또다시 애들에게 왔다가, 또 얼마나 오래 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한 시간이 더 지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컴퓨터가 다운되어, 종이에 계산기로 돈계산을 하느라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네다섯명 정도 사람이 앞에 있을 때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한국 아줌마가 앞사람 옆에 서 있었다. 옷차림이나 선탠이 전혀 없는 아줌마와 아이의 모습으로 보아 한국에서 놀러온 것 같았다. 그전까지 못 보던 사람이라 ‘앗! 새치기?!’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한국 분이세요? 애들이 너무 더워 지쳐 있는데 표 좀 사주시겠어요?”한다. 나는 천사표(?) 남편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이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하고 그 곤란한 자리를 피해 이미 티켓 부스 뒤 그늘에 있던 애들에게로 왔다.

조금 후에 다시 남편에게 가보니 “그 아줌마 못 봤어?” 한다. 뒤에 한 시간 이상 같이 서 있던 남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기다렸었고, 그 아줌마가 새치기하는 줄 서로 뻔히 알고 있는데, 바로 그 앞에서 돈을 받고 티켓을 사 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나한테 가서 얘기를 하고 돈을 주면 내가 그 돈을 남편한테 주어 티켓을 사도록 하라고 했단다. 빨리 그 아줌마를 찾아보라고 해서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봐도 우리 티켓을 살 차례가 될 때까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지만, 나는 콧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던 그 아줌마와 딸의 모습이 생각나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이 정도니 남편은 또 어땠겠는가...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 롱비치 수족관에서도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티켓을 살 때쯤, 중년의 어떤 한국 아줌마가 티켓을 사달라고 거의 당당하게(?) 요구를 했었다. 왜 한국 아줌마들은 젊어도 늙어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그리고는 LA 한국 아줌마 인심은 아주 고약하다고 욕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의 도덕성이나 뻔뻔함에 마음 상하지 않고 다음부터는 그냥 웃으면서 친절하게 티켓을 사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얘기는 꼭 하겠다. “다음에는 한 두 시간 걸려도 꼭 줄 서서 기다리세요. 다 그렇게 해요. 안 그러면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이 다 욕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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