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프 반성론

2000-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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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여주영 <한국일보 뉴욕지사 논설위원>

요즘 골프장은 어딜 가도 한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골프를 즐기느라 야단들이다. 이러한 풍경은 한인들의 경제력이 이만큼 수준에 올라와 있구나 하는 사실을 느끼게 해 뿌듯함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의 현실이 이처럼 너도나도 골프장에 나와 온종일 시간을 소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골프란 피곤한 이민생활에서 신체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없애고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운동이다.

때문에 누구라도 여력이 있어 골프를 즐긴다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가정이나 교육,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골프라면 문제다. 실제로 골프장에 가 보면 갈 사람, 안 갈 사람 가릴 것 없이 형편이 되건, 안되건 무조건 남이 하니까 하는 식으로 나와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모습은 전반적으로 우리의 골프문화가 한인 이민 문화 현실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가 되돌아보게 한다.

골프는 보통 한번 치게 되면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런 골프를 한인들은 상당수가 주 1회, 많은 경우 2~3회씩 즐기고 있다. 비용은 주말의 경우 타운 밖은 보통 50달러, 주중에는 20~30달러씩이 든다. 게다가 저녁까지 먹으면 적지 않은 시간에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골프가 과연 우리의 가정, 교육, 사회, 문화적 추세에 얼마만큼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도 한인사회 현실은 가계 형편이나, 아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그처럼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 있는 입장의 골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런 지장 없이 골프를 자유롭게 칠 수 있는 골퍼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 몇이나 될까.


물론 가게나 자녀교육에 신경을 기울이고 남은 시간, 정서나 건강 면을 생각해 골프장을 찾는다면 이는 무방하다. 그렇지도 않은 사람이 주말마다 골프채나 메고 나간다면 이는 분명 돈 낭비요 시간 낭비다. 한인들이 워낙 즐기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아마도 한인 골프인구는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분위기다. 더구나 이 대열에는 아직도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자녀를 둔 가정주부들까지 앞다투어 가세하고 있어 좀 걱정스럽다.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쳐 거의 하루가 다 소요되다시피 하는 이 운동에 남들이 한다고 해서 여건도 안되는 사람이 ‘나도’ 하며 따라 한다면 좀 무리가 아닐까.

같은 시간 자녀들과 함께 운동을 한다든지, 도서관, 뮤지엄 등을 같이 방문해 시간을 나눈다면 얼마나 유익할 것인가. 또 학교가 문을 열 땐 그 시간에 학교에 찾아가 교정 쓸기, 주방기구 닦기 등 자원봉사를 한다면 얼마나 자녀들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한인사회에는 골프로 기금모금을 하는 단체들이 꽤 많은데 이것도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좋은 취지 하에 상당수 한인들이 골프회동을 하지만 사실상 회비에서 이 것 빼고 저 것 빼고 하면 그들이 과연 골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실익을 얻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도 한인사회에는 먹고살기 위해 골프의 ‘골’자도 모른 채 죽어라 일을 하며 땀흘리는 동포들이 많다. 지나친 골퍼들의 모습이 자칫 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는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기분도 어느 정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골프장에 가면 사실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한인들이 열심히 놀 때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양이다.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한인 교수는 3명의 중국 학생 모두가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옷을 갈아입거나 빨래를 거의 하지 않고 다녀 옷에서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몇 년이면 박사학위를 따 저희 나라로 가버린다며 그걸 보면 수십억 인구가 되는 그들의 미래가 어떠한가를 감지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한인사회에도 이들처럼 형편에 걸 맞는 건전한 분위기의 골프문화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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