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수와 생의 마지막

2000-08-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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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일기

▶ 권영조 (남가주 의사회 전 회장)

지금 98세의 미국 노인을 방사선 치료하고 있다. 귀의 반쪽이 피부암으로 부식되어 출혈을 하고 있으니 그 연세에도 치료를 안할 수 없는 형편이다. 매일같이 빠짐없이 치료받으러 오는 그 정신과 기력이 칭찬할 만하다. 또 90세 된 미국 노인분은 매일 혼자서 차를 운전해 암 치료를 받으러 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연세에 쓸데없는 치료들로 보여지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 평균수명이 빠른 속도로 연장되고 있어서 80세, 90세 노인들이 옛날 환갑의 노인들만큼이나 건장한 것이 예사다.

지난 주일 영국 왕후모의 100세 탄생 기념행사를 보면서도 새삼 느껴진 것이 건강과 수명을 이처럼 급진전시킨 현대의학의 엄청난 공로이다. 역사적으로 단명하기로 알려져 있는 왕실에서도 100세를 사니 평소에 땀 흘려 일하는 평민들이 대부분 장수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자 수명이 지금 평균 83세이고 남자 평균수명이 74세이니 양로원의 90%는 할머니들이고 그 중에 끼어 있는 할아버지의 인기가 대단한 것은 예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평균수명이란 지금 탄생한 아이들의 예상되는 수명이고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고서 살아난 60세의 분들은 앞으로 25년을 아직 살 것으로 예상되고 70세에서는 15년을 더 살 것이며 80세 되신 분은 10년을 더해서 90세가 된다는 통계이다.


누구에게나 수명 연장이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의 질적 향상이라 하겠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가족들이 흔히 하는 질문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이냐다. 어떤 양상의 삶을 살 것인지를 묻는 이는 그 수가 아주 적다. 그렇지만 양보다도 질이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노년기임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지금처럼 수명이 연장될 수록 노인들이 겪는 암이나 심장병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으니 평소의 생활 스타일에 개선이 절실하다. 말기에 이른 병을 가지고서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은 병의 치료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래서 희망을 꺾지 않는다는 뜻으로 의사나 가족들이 계속 치료에 초점을 두고 전념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먼저 솔직한 대화로 얼마나 살 것이니 하는데 몰두하지 말고 삶의 의미와 여생을 정리하는데 모두가 관심을 돌리도록 협력해야 될 때이다. 죽음에 가까워질 때 피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은 평소 준비와 내적 생활의 충실만이 최소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희망의 4대 근원은 가족, 친지 그리고 의료인들의 사랑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신앙심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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