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과 한에 불꽃을.....

2000-08-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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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 장동만, 전직 언론인

눈물과 회한과 감격으로 서울, 평양을 뒤덮었던 남북 이산가족 ‘핏줄의 만남’이 마치 영화 속에 한 극적인 파노라마 같이 잠깐 펼쳐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모든 빅 이벤트가 다 그렇듯이 클라이맥스 뒤에 오는 이 아쉬움, 이 공허감, 이 허전함. 이제 우리는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정이 많은 민족, 한이 쌓인 민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그 민족성을 양철냄비 같이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새 식어 버리는 건망증 심한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장면 장면에서 보여준 그 정의 넘쳐흐름, 쌓인 한의 분출 모습은 당사자는 물론 태평양 건너 멀리서 바라다보는 사람들조차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격과 흥분을 안겨 주었는데 건망증 심한 우리는 이제 또 이를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 망각 속으로 묻어 버려도 좋을 것인가? ‘감격의 대향연’이 끝난 후에 고요와 정적 속에서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이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 본다. 앞으로의 보다 큰 발전과 비약을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준 그 눈물의 넘쳐흐름, 간장을 애는 울부짖음과 몸부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다정다한(多情多恨)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정도 많고 그렇게 쌓인 한도 많고… 다정다감한 감성의 민족이 오랜 역사의 고난 속에서 쌓이고 쌓인 이 피맺힌 한, 그 정과 한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한껏 표출되어 삼천리 강토를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는데 이제 우리는 이 정과 한을 한 단계 승화시켜 보다 이성적, 이지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민족의 슬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그렇게도 무섭게 표출되는 그 정과 한, 그것을 반 세기 동안 그 누가 그렇게 억누르고 짓밟아 왔던가? 아니,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처절한 인간 욕구를 왜 그렇게 억눌림 당한 채, 봉쇄 당한 채, 그냥 그대로 살아 왔단 말인가?


“반세기 동안 그렇게 그리워하는 혈육들을 못 만나고 살아왔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어느 외국 기자의 말, 물론 한반도의 특수 상황을 잘 모르는 ‘인권국가’의 시각이긴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너무나 큰 뜻을 지닌다. 만일 미국 같은 나라에서 어떤 소수민족이 우리 이산가족처럼 그 만남을 그렇게 열망하고 간원하면서도 50여년 동안 그것이 철저히 억눌림 당하고 봉쇄 당했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 것인가?
이제 역사의 변화에 발맞춰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이 정과 한의 심성에 불을 붙여야 한다. 정부와 국가는 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링컨의 말을 빌 필요도 없이 오늘날은 정부, 국가의 존립 의의가 오직 “국민을 위해"(for the people) 있는 시대다. 북쪽 또한 비록 그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국가 목표가 이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남과 북이 어떤 정부, 어떤 국가 체제이건 인간의 기본 욕구를 그렇게 억눌림 당하고 그렇게 봉쇄 당한 채 더 이상 살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살아서도 안된다. 남과 북 7,000만 겨레의 그 넘쳐흐르는 정과 쌓이고 쌓인 한이 한 곳으로 결집, 거기에 불이 붙여진다면 38선 따위 장벽 같은 것은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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