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님 전상서

2000-08-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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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지 (글렌데일)

어머님,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남들의 만남만 부러운 눈으로, 이 못난 자식은 또 울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이놈을 안 낳으셨던들 그토록 가슴에 피멍이 맺힌 반백년의 기다림은 없었을 것을… 비행기는 50분이면 되는 지척인데, 50년 세월동안 지척거린 불효자식입니다. 그래도 소리쳐 어머님 부르면 바람에라도 전하여 나를 다시 뵙기까지 기다려 주실 줄을 믿습니다.

어머님, 향나무 밑의 뜰우물 물은 무더운 이 여름도 얼음물처럼 시원한지요. 어머님, 앞들가의 대추나무는 아직도 잘 열리는지요. 어머님, 뒷들의 감나무 높은 가지 감들은 누구더러 따라고 하셨는지요. 어머님, 북풍한설 추운 밤에 문열어 놓으시고 저 기다리시느라 얼머나 추우셨습니까. 어머님, 휘엉청 밝은 달을 얼마나 원망하셨습니까. 어머님, 창공에 훨훨나는 새들을 얼마나 부러워 하셨습니까.

어머님, 이 자식을 그리도 끔찍히 사랑하셨으니 다시 만나기 전엔 차마 못 떠나실 줄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 가슴에 그 큰 못을 박은 이 불효자식을 한시도 못 잊으신 줄 알고 있습니다. 남북의 장벽이 아무리 오랫동안 닫혀 있어도 끝까지 기다리실 줄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 피눈물 삼키시며 정한수 떠놓고 골백번도 넘도록 백일기도 드리신 줄 알고 있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바닥 다 닳아 아프시도록 저 위해 비신 것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 심장이 멎어서 숨이 막혀도 두눈 똑바로 뜨시고 저 보실 때까지 기다리고 계실 줄 알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이 못난 불효자식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 모자 생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은혜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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