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짜 대화, 가짜 대화

2000-08-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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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제언

▶ 신혜선 (KYCC 한인 청소년회관 상담원)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애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지요. 마약이니 갱이니 인터넷이니... 아무튼 예전에 저희 학창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복잡한 세상이니까요. 답답해서 붙잡고 좀 물어보려고 하면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이럴 때는 제가 부모로서 아주 엄격하고 강하게 대처해야 할까요?”

많은 학부모들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사실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지낸 70년대에는 지금 21세기 미국에서 자라나는 한인 청소년들과 너무나도 큰 세대 및 문화 차이를 보인다. 70년대 조흔파 선생이 쓴 ‘얄개전’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 학부모들은 주인공 얄개의 결코 밉지 않은 악동 짓에 공감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급격히 변해 왔고 10대 자녀를 둘러싼 주위환경 역시 더 이상 얄개 수준의 행동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특히 한국과는 너무도 틀린 미국의 학교 제도 또한 한인 학부모님들이 적응하기에 힘든 장애물 중의 하나이다. 학생을 사랑의 매로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그리고 방과 후 저녁 늦은 시간까지 담임 선생님의 감독 하에 학교에서 책임지고 고등학생 자녀를 보아주는 학교 제도 또한 미국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대가 바꾸고 문화가 틀리다 하더라도 자녀 양육에서 바뀌지 않는 근본 초석이 있다. 바로 효율적인 대화기법이다. 학부모 세미나에서 강의를 할 때 자녀와의 대화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면 벌써 많은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항상 대화로써 자녀를 이해하라는 이론적이고 식상한 내용을 발표하려는 구나’라는 표정이 보인다. 그런데 소위 그 뻔한 대화기법에 바로 자녀 양육의 해답이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아직 어린아이일 때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을 하면서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이라고 여기다가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자녀 쪽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부하면 당혹감을 표시한다.

자녀와의 갈등시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와의 대화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신속한 묘안을 찾으나 막상 대화란 자녀에게 비아냥거림, 훈계, 나무람, 소리 지르기, 다시는 그런 일을 안하겠다는 다짐 받아내기가 아님을 부모님들은 인식하여야 한다. 부모와 자녀간에 감정적인 말싸움으로 비화되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등 왜 나만 가지고 난리냐는 식의 말꼬리 싸움은 부모와 자녀간의 힘겨루기이지 대화일 수 없다.

대화 때에는 먼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이해하려는 경청기법이 필요하다. 많은 청소년들은 부모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말을 가로막고 화부터 낸다고 불평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전에 자녀가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에 들어보지 않아도 뻔히 무슨 내용이며 변명인지 안다고 반박한다. 대화의 첫걸음이 이처럼 상대편 이야기를 ‘안 보아도 변명을 늘어놓는구나’ 식의 선입견에서 시작한다면 이미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들이 흔히 생각하는 극히 이론적이고 뻔한 ‘대화 나누기’는 이렇게 첫단계부터 어렵고 많은 인내와 훈련, 요령이 필요하다.

부모와 10대 자녀와의 갈등은 대부분 정해진 규율이 지켜지지 않음에서 기인하는데 부모들이 일방적으로 ‘너 다시는 컴퓨터 못할 줄 알아’라든가 ‘나갔다 하면 매일 늦으니까 너는 학교 끝나자마자 집에 와 있어. 안 그러면 이번에는 가만히 안 둘 거다’ 식의 현실적으로 자녀가 지킬 수 없는 막말이나 으름장으로는 자녀의 똑같은 행동만 반복될 뿐 해결 방안과는 거리가 멀게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의사 표현은 자녀로 하여금 우리 부모는 지금 화가 나서 하는 말뿐이지 며칠만 지나면 괜찮다는 무책임함을 길러주게 된다. 효율적인 대화는 비단 부모와 자녀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전반에 걸쳐 중요한 수단이다. 자녀와의 대화시 자녀의 무책임한 태도에 역정을 내어 감정적이 되기 쉬우나 보다 효과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규율 적용과 자녀의 문제 행동에 따라오는 규제조치를 미리 설정하여 말싸움이 아닌 의사전달의 방법을 사용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에 대한 이해 및 연습 또한 필요하니 자녀 양육이란 참으로 하기 어려운 평생의 과제라는 말이 실감난다. 올바른 대화 방법이야말로 현재 급변하는 환경에서 부모들이 자녀와의 유대관계를 증진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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