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주권 전문절도

2000-08-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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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A씨는 최근 사업차 중국에 갔다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상해에서도 차로 서너 시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 있는 공장에 도착한 후 제품 디자이너들과 말이 안 통해 고생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한자를 써가며 가까스로 의사는 전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호텔에서 묵던 중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옆에 놔뒀던 전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중국이 험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나름대로 조심은 했다. 중요한 물건은 전대에 넣어 나다닐 때는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녔다. 호텔도 근처에서는 제일 좋은 곳으로 골랐다. 날이 하도 더워 잘 때 잠시 풀어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방안에 다른 물건도 많았는데 딴 건 다 놔두고 그것만 집어갔다.

현금이야 잃어버린 셈치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영주권이었다. LA로 돌아올 날짜는 다가오는데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을 일이 아득했다. 상해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물어보니 일단 분실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조회가 끝날 때까지 무조건 여권을 압수한다는 것이다. 조회하는데 빨라야 사흘이 걸린다는데 돈도 다 떨어진 형편에 아는 사람도 없는 상해에서 며칠 더 보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무조건 비행기를 탔다. 영주권을 보여 달라는 항공사 직원 요청에는 “비행기 떠날 시간 다 됐는데 무슨 영주권이냐”고 우겨 그냥 들어갔다.


정작 문제는 LA 공항에 내려서부터였다. 입국 심사원에게 영주권 카피와 운전면허증, 기타 지니고 있던 신분증이란 신분증은 다 보여 줬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영주권 없이 비행기를 탄 것부터가 불법”이라며 강제 출국은 물론 항공사 직원까지 처벌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번 한번만 봐달라”는 읍소작전 끝에 옆에 가 영주권 분실신고를 하고 간신히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해외 여행을 하는 미주 한인이 늘어나면서 외국에서 영주권이나 여권을 잃어버려 고생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는 미국에서 온 여행객만 전문으로 터는 절도단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이 제일 먼저 노리는 것은 돈이나 보석이 아니라 여권과 영주권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어 영주권 한 장이 암시장에서 3만달러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한 여행 관계자는 “외국에 나갔다가 여권과 영주권을 도난 당해 애를 먹는 한인이 늘고 있다”며 해외 여행객들의 각별한 주의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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