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인회관 경매사태 유감

2000-08-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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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한국노인회관 경매처분 사태를 놓고 한인타운에 말이 많다.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영어를 몰라서 그랬다니 말이 되는가’ ‘창피해서 말이 안 나온다’등 실망과 분노, 허탈감에 찬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서 들려온다.

한국노인회는 한인사회의 어른단체다. 그리고 14년동안 이 단체를 이끌어 온 정의식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주요 행사가 열릴때마다 원로들의 대표자격으로 헤드테이블에 앉아 축사와 격려사를 도맡아 하면서 단체장들의 대선배로 대접을 받아 왔다. 한인사회의 자존심과 체면이 달린 단체의 회장이기에, 그리고 단체장이기에 앞서 ‘나이드신’ 노인이기에 정 회장이 간혹 공석에서 실언과 실수를 하더라도 모두 모르는채 눈을 감아줬다. 일종의 ‘치외법권’을 누린 셈이다.

노인회관은 12년전 수천명의 한인들이 노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위해 십시일반으로 모은 20여만달러의 성금으로 구입된 건물이다. 따라서 노인회관은 한인사회의 자산이요 공동소유물이다. 결코 노인회의 전유물이 아니며 어느 한 사람의 사유재산도 아닌 것이다.


정 회장은 그동안 아리랑아파트 건립등 좋은 일도 했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귀중한 자산을 재산세 체납문제로 날려버린 실수 아닌 실수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정 회장은 경매처분 사실보도가 나간뒤에도 ‘재산세 밀린 것이 없는데 카운티 정부가 음모를 꾸몄다’ ‘일제시대때 세무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세무행정에 밝다’ ‘개인적으로 치부한 돈은 없다’라는 동문서답만을 되풀이 할뿐 책임의식을 갖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새 건물주 박인선씨가 노인회관을 찾아가 명의반환 의사를 밝힐때도 ‘한인사회의 성금으로 마련된 건물’이라며 당연히 되돌려 받을 것을 받게 된것처럼 말해 주위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 잘못을 용기있게 인정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타운의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유사사태의 재발을 막고 조속한 시일내에 수습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한인회를 비롯한 한인단체들은 이번 노인회관 사태를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봉사단체들의 신뢰문제가 걸렸다는 공동체적 위기의식을 갖고 사태수습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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