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학생 무더기 체포는 공권력 남용이다

2000-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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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라크레센타 밸리뷰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 크리스티나 김양을 비롯 한인 학생이 5명이나 무더기로 체포됐다 풀려난 사건은 이 지역 경찰의 업무수행 능력과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로부터 기소 의뢰를 받은 LA 카운티 검찰은 증거가 턱없이 부족한데 놀라움을 표시했으며 기소를 해도 유죄를 입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전과가 없는 한인 여대생이 살인 용의자로 잡힌 백인 남성을 납치하려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한 백인 청소년의 주장만 듣고 그와 안면이 있는 한인 학생들을 저인망식으로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

경찰로서는 몸을 사리다 범인을 놓치기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일단 잡아놓고 보자는 판단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아무런 물증도 없이 학교 근처에 사는 한인 학생들을 마구잡이 해간 것은 공권력 남용이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과연 체포된 학생들이 아시안이 아니라 백인이었다면, 아니 흑인이었더라면 그 정도의 희박한 사유로 잡아갈 수 있었을까.


미국 어느 도시보다 다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LA는 인종분규 가능성도 어느 곳보다 높은 곳이다. 65년 와츠 폭동과 92년 4.29 폭동이 모두 경찰의 소수계에 대한 부당한 공권력 사용이 발단이 됐다. 소수계를 상대로 한 법집행 시에는 인종차별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종차별적이란 인상을 주는 행위조차 피해야 한다. 글렌데일 경찰이 한인을 깔보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한인들 눈에 경찰의 이미지가 흐려질 것이란데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면 한 때의 해프닝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 다음에 이보다 더한 억울한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미국은 민주사회고 민주사회란 시민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회다. 살인사건 용의자 납치혐의로 체포됐다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려난 크리스티나 김양 남매측은 경찰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고 있어 민권침해 소송이 벌어질 전망이다.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학부모는 물론이고 한인타운 관련 단체들도 글렌데일 경찰에 편지를 보내 유감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는 지름길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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